코로나사태 장기화에 따른 충격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숨죽이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만은 예외다. 지속되는 경기불황에도 부동산시장의 과열은 가히 역대급이라 불릴 만하다. 

현 정부 들어 발표된 23번째 부동산공급대책이 현재의 심각한 시장상황을 대변한다. 부동산시장과 정부정책의 디커플링(탈동조화)으로 시장왜곡 현상이 심화돼 있다. 

이번 8•4주택공급대책은 지금까지의 ‘수요억제’ 일변도와 달리 ‘공급’에 방점을 둔 대규모 수도권 주택공급방안이다. 서울권역에 26만2000채 이상의 추가공급과 향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127만 채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수도권에 공급된 주택물량이 연간 약28만 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공급물량이다. 

그렇지만 ‘공급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시장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많은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100%를 넘긴 주택보급률로 강력한 수요관리에 치우쳤던 정책이 공급확대로의 방향전환을 시사했다. 시장수요에 대응한 주택 공급정책 방향 재설정에 대한 시그널로 보인다. 

집값 상승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인구구조, 정부정책, 조세부담, 금리수준, 규제강도 등 외부요인의 영향이 크다. 그렇지만 가장 본질적인 요인은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는 시장원리다. 모든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하락하고,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상승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가격이 높을수록 잘 팔리는 명품시장의 ‘베블런 효과’가 부동산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수요가 감소하지 않는 투기적 속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급부족으로 인한 시세변동을 노린 가수요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주된 원인이다. 이렇게 수급불안을 틈탄 가수요가 집값에 대한 합리적 인식과 평가를 흔들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으로 실수요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까닭이다.  

일찍이 아담 스미스는 재화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별했다.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집의 ‘주거’라는 ‘사용가치’와 ’가격‘이라는 ‘교환가치’중에 본질적 가치는 ‘주거’다. 그러나 현실은 ‘가격’이 ‘주거’라는 본질적 가치를 압도한다. ‘가격’이 곧 ‘가치’라는 개념이 부동산시장에 통용되면서,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삼켜 버렸다.

신저 ‘가치의 모든 것(The value of everything)’ 저자인 영국의 경제학자 마추카토는 ‘가치’와 ‘가격’의 전도가 ‘부의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에서 매기는 ‘가격’이 과연 정당한 ‘가치’인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가수요로 결정된 집값이 ‘공정한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지대추구(rent seeking)를 겨냥해 오직 ‘교환가치’만을 거래목적으로 형성된 가격에는 거품이 끼기 마련이다. 

시중에 풀린 자금이 투자나 소비와 같은 생산적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부동산에 쏠려 돈을 불려나가는 방식의 ‘금융화 현상’이 팽배해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5배가 넘는 시중의 유동성과 저금리에 편승해 부동산투자의 ‘금융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부동산 ‘금융화 현상’의 결과물이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다.   

이처럼 부동산에 대한 ‘금융화 현상’은 시장의 합리적인 가격결정구조를 교란시키는 요인이다. 주식시장에서 유동성 장세에 힘입어 상승한 주가를 정상적인 기업가치가 반영된 시세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집값 상승이 영원할 수 없다. 앞으로의 부동산정책이 주택가격의 ‘비정상화의 정상화’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부동산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금융화 현상’의 이상 징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정부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가격은 짧고 가치는 길다”는 삶의 지혜가 집값에 대한 합리적인 ‘가격’과 ‘가치’로 이어져야 한다.   

이치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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