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하스-허경민-김태훈-이형종(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네티즌 사이에는 ‘분유버프’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얻은 선수가 비싼 분윳값을 벌기 위해 이전보다 뛰어난 활약을 한다는 의미다. 버프(buff)는 본래 게임 용어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향상하는 효과를 뜻한다.

선수들도 야구장 밖에선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야구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을 키운다.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각성한 선수들이 많다.

올 시즌엔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 허경민(이상 30ㆍ두산 베어스), 이형종(31ㆍLG 트윈스), 김태훈(28ㆍ키움 히어로즈)이 ‘분유 버프’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로하스는 지난해 시즌 후 아들을 얻었다. 아들 멜 크루 로하스 3세가 태어난 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올해 KBO리그 4년 차에 접어든 로하스는 20일까지 타율(0.362), 홈런(29개), 타점(77), 장타율(0.710), OPS(1.129)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득점(72)과 안타(121개) 부문에서도 상위권에 올라있어서 지금과 같은 타격감을 유지한다면 2010년 이대호(38ㆍ롯데 자이언츠) 이후 역대 두 번째 타격 7관왕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KT 로하스는 지난 6월 25일 NC 다이노스와 더블헤더 2차전에서 아들 이름을 한글로 새긴 특별한 운동화를 신고 통산 100번째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그는“아직 어리지만, 아빠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였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 허경민은 지난달 득녀하며 ‘딸바보’ 대열에 합류했다. KBO리그는 지난해부터 경조사 제도를 도입했다. 자녀 출산, 직계 가족의 사망 등 경조사를 맞은 선수는 5일의 경조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7월 11일 출산 휴가를 얻어 1군 엔트리에서 빠진 허경민은 딸을 얻은 뒤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7월 11일 이후 14경기 중 9경기에서 ‘멀티 히트(한 경기 안타 두 개 이상)’를 쳤다. 7월 한 달 동안 나선 22경기에서 모두 출루를 하는 등 83타수 41안타로 타율 0.494를 기록하며 7월 월간 MVP를 받았다. 생애 첫 월간 MVP를 수상한 허경민은 “그동안 아이가 생기면 책임감이 늘어난다고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그렇더라. 아이가 야구를 알 때까지 주전으로 뛰고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LG 이형종은 17일 득남하며 아버지가 됐다. 예정일인 29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왔지만,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는 아들의 출산일이 다가오자 맹타를 휘둘렀다. 8월에만 12경기에서 타율 0.409, 4홈런, 8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류중일(57) LG 감독은 “저도 어릴 때 결혼해서 아내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직후 출전한 경기에서 홈런도 쳤다. 아이 나왔을 때도 기분이 좋고 아버지가 되면 그렇다”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했다. 식구가 생겼으니 야구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라고 덕담했다. 형종이 기분이 좋으니까 아마 잘 칠 거다”라고 웃으며 애정 어린 축하를 건넸다.

이형종은 최대 사흘을 쉴 수 있지만, 팀을 위해 출산 휴가를 떠난 지 하루 만에 복귀했다. 그는 “일부러 야구가 없는 월요일을 출산일로 잡았다”고 너스레를 떤 뒤“아버지가 돼서 기분은 좋다.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잘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들뜨지 않고 잘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키움 김태훈은 개막 하루 전인 지난 5월 4일 딸을 얻었다. 출산하는 아내의 곁을 지키느라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한 김태훈은 지난 5월 10일 1군에 올라온 뒤 키움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팀 사정에 따라 필승조, 롱 릴리프, 추격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32경기 5승 8홀드 평균자책점 3.30을 기록 중이다. 손혁(47) 감독이 전반기 ‘언성 히어로(Unsung Heroㆍ보이지 않는 영웅)’로 꼽을 정도로 키움 마운드에서 소금 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태훈은 시즌 초 인터뷰에서 "책임감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야구도 잘해야 하고, 가족들에게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실=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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