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본지에 연재한 칼럼 '안신애의 필드 다이어리'에서 악플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던 프로골퍼 안신애. /안신애 인스타그램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글로 사람을 죽인다.’ 바로 ‘악플(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포털 네이버(Naver)가 다음(Daum)에 이어 27일부터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한다.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 중단에 이은 조치다. 다만 댓글 서비스의 영구적 폐지가 아닌 ‘잠정 종료’다. 한국스포츠경제는 포털뿐 아니라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악플을 뿌리 뽑기 위한 기획 시리즈 <악플과 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마련했다. 우선 ①악플 피해 사례와 심각성을 따져본 후 ②원인과 ③대책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3년 전 얘기다. 한 정상급 프로골퍼의 측근으로부터 선수의 심리 상태에 관한 놀라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그 선수는 정점을 찍었다가 한동안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부진의 이유를 두곤 여러 추측이 오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극심한 심리적 불안인 우울 증세였다. 측근은 “해당 선수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성적과 그로 인한 악플이 스스로를 옥죄어 결국 우울 증세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그 선수는 1년 후 투어 우승을 일궈냈고, 결국 그동안의 어려움을 취재진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부 선수들 “죽으면 악플 없어질까”

스포츠계에서 악플 피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배구선수 출신 고(故) 고유민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서도 일부에선 악플 얘기가 나왔다. 전용기(29)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악플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 받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전용기 의원은 7일 악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인물이다. 개정안은 현행법상 온라인상의 혐오, 차별 표현 등 모욕에 대한 죄를 신설하고,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와 같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그는 “제 친구들 중에도 스포츠 선수들이 있는데 악플을 보면 힘이 빠진다고 하더라. 심지어 ‘죽으면 악플이 없어질까’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악플을 강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걸 가지고 악플로 공격하면 선수들은 더욱 위축된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등이 혐오의 표현까지 받아야 할 일은 분명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용기 의원은 최근 유승민(38)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포털 네이버 관계자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네이버도 스포츠 뉴스 댓글 삭제 검토를 해왔다. 이번에 중단하지만 악플 삭제 시스템이 개선되면 다시 댓글 페이지를 열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둔다고 한다. 폐지가 아니라 ‘잠정 중단’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악플은 계속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포털뿐 아니라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와 선수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 사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한때 악플에 시달렸던 축구 선수 장현수(왼쪽)와 신태용 감독. /KFA 제공

◆비판 넘어선 ‘비난과 혐오’의 댓글

악플은 상대방의 정신을 갉아먹으며 피해자가 선수일 땐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에 나선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악플’로 경기력에 지장을 받았다. 조별리그 조별리그 스웨덴전(0-1 패)과 멕시코전(1-2 패)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한 선수는 졸지에 축구 팬들에게 ‘원흉’이 됐다. 월드컵 현장에서 만난 대표팀 관계자는 해당 선수에 대해 “겉으로 표현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많이 힘들어 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여자축구 대표팀과 달리 남자축구 대표팀엔 심리전문가가 고용되지 않은 상황을 두고 당시 취재진은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지휘했던 신태용(70) 감독은 “대회전부터 여론이 좋지 않고 악플들이 많아 저를 비롯한 일부 선수들의 사기는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골프계에서 가장 많은 악플에 시달렸던 안신애(30)는 2017년 본지에 4개월간 연재한 칼럼 <안신애의 필드 다이어리>에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제 골프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악플이다”라며 “특히 상처만 받게 되는 댓글들이 달렸다. 음담패설에 가까운 댓글들이었다. 너무 야해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인 그런 내용의 댓글들을 읽으면서 여자로서 수치심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물론 그는 “쓴소리라도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건전한 비판'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미녀 골퍼는 악플이 무서워서 언론사들의 인터뷰들을 정중히 사양하기도 했다. 선수와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당시 “우승이 아직 없기 때문에 좋지 않은 댓글들이 달릴 것 같다. 경기하는 데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우승을 하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스포츠심리 전문가인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최근 통화에서 “(인간관계에선) 건설적인 내용이 오고 가는 게 바람직한데 악플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악플의 내용은 받는 사람보단 쓰는 사람의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선수 입장에서 악플이 달리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그것이 사실은 쓰는 사람의 심리나 상태를 반영한다는 걸 알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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