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혜안의 경영인’ 고 최종현 회장 22주기
석유화학, 정보통신, 반도체 이어 바이오까지 육성
사회공헌을 사회적가치로 확대한 남다른 DNA 전파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이라는 지론으로 미래를 준비한 고 최종현 SK 회장. 사진=SK그룹

[한스경제=조윤성 기자]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래를 내다본 기업인 고(故)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지 22주기를 맞았다. 최 회장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원대한 꿈을 치밀한 준비(지성)와 실행력(패기)으로 현실로 만든 기업인이다.
최종현 회장에게 ‘불가능’은 미래를 내다보고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은 사람의 핑계에 불과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으며,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로 ICT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여기에 넓은 혜안으로 바이오사업 육성의 결실을 거두면서 SK그룹은 석유화학과 에너지, 정보통신과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까지를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종현 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지난 1973년 당시 선경(現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천명한 바 있다. 섬유회사에 불과했던 SK가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최종현 회장이 ‘불가능한 꿈에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부정적 시각을 뒤로 하고 최종현 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 치밀한 준비 끝에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1983년부터는 해외유전 개발에도 나섰다.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한 결과,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뚝심으로 대한민국이 무자원 산유국 대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후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고 최종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시절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SK그룹

한발 앞선 ICT투자로 미래설계

정보통신기술(ICT)사업에도 최종현 회장은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한발 앞선 투자를 단행하는 혜안을 가졌다. ICT사업 투자는 최 회장의 미래설계로 대표된다. 그는 그룹 총수의 역할이 미래비전을 제시하는데 있음을 인지하고 글로벌 산업동향 분석하기 위해 1994년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웠다. 미국ICT 기업 투자를 통해 정보통신사업을 미래 캐시카우로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이러한 준비 끝에 최 회장은 1992녀 압도적 격차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뛰어들어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최 회장은 특혜시비가 일자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직워들을 설득하고 사업권을 자진 반납한 일화도 있다. 이후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주당 8만 원 대이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하자 주변의 간곡한 만류에도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라고 설득했다.

바이오사업도 치밀한 준비로 초석다져

최근 들어 결실을 거둔 바이오사업도 최종현 회장의 치밀한 준비로 가능했다는 게 SK측의 전언이다. 최종현 회장은 1990년대 들어 에너지·화학 산업의 뒤를 이을 성장동력원으로 제약·바이오에 주목하고 1993년 제약(Pharmaceutical)의 영어 단어 첫음절을 딴 'P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바이오 사업을 시작했다.

최종현 회장은 신약 산업의 최전선인 미국 뉴저지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국내에도 별도의 연구팀을 구성, 오늘날 SK그룹의 바이오 사업 초석을 다졌다. 최 회장의 긴 안목의 투자로 SK는 지난해 11월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약승인을 받는 등 바이오 산업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내게 됐다.

전경련 회장 시절인 1997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울 때도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경제 살리기를 호소했던 최종현 회장은 1998년 8월 26일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최종현 회장은 화장(火葬)이 드물었던 시절 화장 유언을 남겼고, 가족들이 이를 실천해 사후에도 큰 울림을 남겼다.

최태원 SK 회장이 2018년 8월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고 최종현 회장 20주기 추모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SK그룹

최종현 DNA, 물려받은 최태원 회장

최종현 회장이 남긴 경영 DNA는 장남 최태원 회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종현 회장이 항상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한 끝에 SK를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면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30년 전 최종현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가 있었다.

1998년 최태원 회장이 취임할 당시 SK그룹은 매출 37조 4000억 원, 순이익 1000억 원, 재계 순위 5위였으나 현재는 매출 136조 원으로 재계 순위 3위로 성장했다. 또한 최종현 회장의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 발전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더 큰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다.

조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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