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69세’(20일 개봉)는 노인 여성이 사회의 차별과 편견 속 자신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키는 내용을 담담하게 그린다. 69세 효정(예수정)이 29세 간호 조무사 중호(김준경)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한 뒤 세상의 무시 속 홀로 일어서는 과정을 담고 있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효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극 중 효정은 품위 있고 차림이 말끔한 노인이다. 시인 동인(기주봉)과 동거를 하지만 전형적인 부부가 아닌 동반자로서 함께한다. 각자의 삶에 대해 존중하며 살아간다.

효정은 사회로부터 무시 받지 않기 위해 깔끔한 옷차림으로 다닌다. 사람들은 ‘아가씨 같다’ ‘노인 같지 않다’라는 편견 섞인 말로 효정을 평가한다. 그런 효정을 주시하고 있던 중호는 그에게 못할 짓을 하고, 효정은 경찰서에 신고한다. 그러나 담당 형사는 오히려 가해자 중호를 두고 “친절이 과했다”라고 한다. 이는 노인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인 여성이자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취급을 받는 효정.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삼자대면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효정은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발문을 띄우며 가해자를 응징한다.

영화 '69세' 리뷰.

‘69세’는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다루며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차별과 편견을 견뎌야 하는 나이는 없다. 삶을 살아가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인권을 지켜야 하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때는 참지 말아야 한다. ‘69세’는 이 당연한 순리가 고령의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것임을 효정의 모습을 통해 강조한다.

데뷔 42년차 배우 예수정이 외유내강한 연기로 효정의 얼굴을 보여준다. 감정을 모두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이성을 지키고자 하는 효정의 모습을 단단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의 몰입을 이끈다. 예수정은 “자신의 삶을 묵묵하게 견뎌온 사람이라면 상당히 많이 삼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메가폰을 잡은 임선애 감독은 2013년 우연히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관련 칼럼을 읽은 뒤 2016년 시나리오를 썼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효정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성폭력은 소재일뿐 영화의 주된 메시지가 아니다. 임 감독은 “노년의 삶에 대한 편견과 인간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인지 못하는 폭력을 영화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이 각인되길 바랐다”라고 의도를 밝혔다.

국내에서 다루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연출이 발목을 잡는다. 조각조각 편집된 듯한 화면 전환과 맥이 끊기는 구성, 진부한 설정이 흠이다. 러닝타임 100분. 15세 관람가.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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