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매출 절반 '남의 제품'에 의존
한독-제넥신 마곡 R&D센터. /한독 제공

[한스경제=변동진 기자] 한독이 자체 신약개발보다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혁신)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최근 3년뿐 아니라 올해 상반기도 연구개발(R&D) 투자가 크게 줄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독의 올해 상반기 R&D 투자액은 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R&D 비율은 3.7%로 0.8%p(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한독은 연결기준 올해 상반기 2000억원 이상 매출액을 올린 상장 제약·바이오사 가운데 R&D 투자액이 가장 크게 감소했다. 게다가 최근 3년(2017~2019년) 동안 R&D 투자액이 14.3%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017년 224억원에서 2018년 211억원, 지난해 192억원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R&D 비중 2017년 5.4%에서 지난해 4.1%로 1.3%p 하락했다.

한독은 R&D 투자에 인색할 뿐만 아니라 '남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전체 매출액 2386억원 가운데 상품매출(1286억원) 비중이 53.9%에 달했다. 

상품매출은 직접 생산하지 않고 다른 기업의 제품을 도입·판매해 얻은 매출을 의미한다. 즉 '남의 제품'으로 외형을 키운 셈인데, 상품매출이 높을수록 자생력은 허약하다는 방증이다.

한독의 주요 도입품목으로는 미국 알렉시온의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 치료제 '솔리리스',  스위스 악테리온의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옵서미트'와 로슈의 파킨슨증후군 치료제 '마도파', 프랑스 사노피의 수면유도제 '스틸녹스' 등이 있다.

◆ 한독, 오픈이노베이션 투자 회수로 수이익 늘려

한독은 자체 신약개발 투자는 줄이는 대신 오픈이노베이션에 집중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지난 2012년 프랑스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 합작관계를 청산한 이후 바이오벤처 기업인 제넥신을 시작으로 에스씨엠생명과학, 미국 바이오벤처 기업인 트리거테라퓨틱스·에이디셋 바이오 등에 5~6년간 200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이로 인해 2015년 18억원, 2016년 74억원의 순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독은 2017년 말부터 투자금 회수 목적으로 제넥신 지분을 일부 매도해 당시 35억원이던 순이익이 2018년 71억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또 에스씨엠생명과학의 지난 6월 기업공개(IPO)에 따른 지분가치 반영으로 올 2분기 순이익 11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57억원 순손실에서 흑자전환했다.

한독 측은 R&D 투자비용 감소에 대해 "자체개발보다 오픈이노베이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약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원. /게티이미지뱅크

◆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 대세는 오픈이노베이션

한독과 마찬가지로 유한양행을 비롯해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보령제약 등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사들도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6년 미국의 항체신약 개발 전문 회사인 소렌토 테라퓨틱스(Sorrento Therapeutics)와 혈액암 및 고형암 치료 관련 항체 개발을 위해 합작투자회사인 이뮨온시아를 설립했다.

이뮨온시아는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IMC-001'에 대한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비슷한 시기 또다른 신약 후보물질인 'IMC-002(CD47억제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1상을 승인받은 바 있다.

동아에스티는 연구과제 공모를 통해 1년간 최대 1억원까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앞서 진행된 1~3회 공모에는 185건의 과제가 접수돼 면역항암 6건, 퇴행성 뇌질환 2건, 자사제품 적응증 확장 12건을 선정해 지원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9월 미국 바이오기업 '페인스테라퓨틱스'와 이중·다중항체 기반 면역항암 신약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보령제약은 디지털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펀드인 '보령 디헬스커버리(D:HealthCovery)'를 지난 24일 출범했다. 이를 위해 엑셀러레이터 '더인벤션랩'과 총 10억원을 투자했다.

한독 서울 서초 본사. /한독 제공

◆ 한독, 창립 후 신약 개발 '전무'

많은 제약·바이오사들이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독처럼 오픈이노베이션에만 R&D가 쏠린 것과는 결이 다르다. 대부분 매출의 10%가량을 자체 신약개발에 투자해 투 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신약개발이나 IPO에 실패할 경우 투자금 회수가 힘들다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한독의 이같은 오픈이노베이션 쏠림 현상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R&D 능력이 부족해 자체 신약개발을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지난 1954년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하나의 신약도 개발하지 못한 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반면 오랜 R&D 투자로 신약개발 능력을 인정받은 업체들은 이미 글로벌 제약·바이오사들을 상대로 초대형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일례로 유한양행은 최근 미국 프로세사 파머수티컬과 기능성 위장관질환 치료 신약 YH12852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규모는 4억1050만달러(약 5000억원)다. 이 가운데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 200만달러(약 24억원)를 프로세사 주식으로 수령한다.

한미약품도 MSD에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 신약 후보물질 LAPS GLP/Glucagon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HM12525A)의 판권을 8억7000만달러(약 1조40억원)에 기술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은 1000만달러(약 119억원)다.

업계 관계자는 "자체 신약개발은 오랜 기다림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픈이노베이션을 병행한 투 트랙 전략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특히 자체 신약개발 경험이 쌓이면 플랫폼 발굴은 물론 기술수출, 나아가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까지 확보할 수 있어 향후 엄청난 수익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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