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대한간호협회 진료거부 중단 촉구..."일부 불법 진료 업무까지 떠맡아"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 4대 정책에 반대하며 가운을 벗고 있는 전공의들. /연합뉴스

[한스경제=변동진 기자]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전임의들의 무기한 집단진료거부 사태가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부산과 의정부에서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의료대란 확산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 모양새다.

31일 정부는 비수도권 수련병원과 응급·중환자실 10개소에 대해 3차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응급·중환자실의 경우 생명이 위중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인 만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생각해 정부의 강제적 행정조치 여부와 관계없이 조속히 복귀해줄 것을 요청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26~27일 1차로 수도권 20개 수련병원에 이어 28일부터 수도권 10개와 비수도권 10개 수련병원에 대한 2차 현장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한 제2차 전국 의사 총파업 사흘째던 지난 28일 기준 휴진율은 전공의 75.8%, 전임의 35.9%에 달했다. 같은 날 낮 12시 기준 전국 17개 시·도 의원급 의료기관 3만2787곳 중 2141곳이 휴진했다.

현재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서울 빅5 병원 외래는 평소보다 10~30% 정도 줄었고, 수술이나 시술 일정도 평소의 30~50%까지 축소됐다.

◆ 의료공백 최소화 노력중이지만…곳곳에서 피해 발생

의료계는 사회 안팎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도 발생했다.

지난 28일 오전 5시 40분쯤 사망한 경기 의정부시 30대 심정지 환자의 경우 시내 4개 병원으로부터 '이송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가운데 2곳은 규모가 작아 원래 야간에 심정지 환자를 받지 않지만, 나머지는 환자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또한 26일 오후 11시23분께 부산 북구에서 약물을 마신 A 씨의 경우 1시간 20여분간 부산·경남 지역 대학병원 6곳, 2차 의료기관 7곳에 20여 차례 이송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치료 인력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는 결국 27일 오전 숨졌다.

빅5 병원 관계자는 "현재 외래를 줄이고 급하지 않은 수술과 시술은 연기하고 있다"며 "응급실의 경우 의료진 공백 최소화를 교수진들도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의료대란은 현재 파업국면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아직까지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방침"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평소보다 많은 교수들이 응급실을 커버하며 인력 공백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며 "파업이 지속된다면 교수와 간호사 등 현장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의료계 집단진료거부로 불법 진료 업무까지 떠맡고 있다며, 관련 단체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간협은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의료현장을 떠난 것은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며 "이들이 떠난 진료현장에 남은 건 간호사들의 근무환경 악화와 업무 부담 가중"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위계적 업무 관계에 놓인 간호사들은 일부 불법적인 진료 업무까지 떠맡고 있다"며 "일부 의사들이 간호사들에게 대정부 투쟁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나이팅게일 선서'에서 환자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고,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료계 집단진료거부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환자들을 위해 31일부터 '집단휴진 피해신고·지원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더불어 집단휴진 중인 전공의 가운데 "응급실과 중환자실 전공의들에 대해, 먼저 법적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전공의 10명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한 바 있다.

◆ 의료계, 정부 강력대응에도 '파업 강행'

정부의 강력 대응과 현장 의료진의 업부 부담 가중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도 정부의 정책 강행 시 단체행동을 불사하겠다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지난 29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파업으로 인해 의대생과 전공의 및 전임의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잘못된 정책의 시행을 막기 위한 제자들의 옳은 판단과 정당한 주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공의들 역시 1박 2일에 걸친 토론 끝에 파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지난 29일 오후 10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회의를 열어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격론을 벌였다. 1차 투표에서 전공의 대표자 193명 중 96명(49.7%)이 파업을 지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가결 정족수인 과반수(97표)를 넘기지 못해 부결됐다.

대전협은 30일 오전 다시 회의를 열어 재투표를 했고, 134명 찬성으로 파업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비상대책회의 참석자 전공의 대표 103인의 이름.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 전공의 일부, 파업 반대 목소리 내..."비대위 무시하고 대표자회의가 파업 밀어붙여"

전공의들은 파업 지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인턴과 1년차 레지던트, 3년차 레지던트로 구성된 '어떤 전공의들'은 30일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보내 대전협 비대위 집행부 다수가 의료계가 마련한 타협안 수용과 집단휴진 철회를 주장했으나, 임시전국대표자비상대책회의(대표자회의)에서 휴진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어떤 전공의들은 "대전협 비대위 다수가 '타협안' 대로 국민 건강과 전공의 전체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중단하길 원했다"고 했다. 여기서 '타협안'이란 대전협과 의학교육 및 수련병원 협의체가 합의해 서명한 문서다. 이 안에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와 정부로 구성된 '의·정 협의체'에서 원점부터 정책을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떤 전공의들은 "전날(29일)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전공의들로부터 확인된 사항을 언론에 밝히고자 한다"면서 "비대위의 의견이 무시된 상태에서 일선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대표자회의에서 졸속 의결해 파업을 밀어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 다수의 의견을 건너뛰고 대표자회의를 연 것"이라며 "대전협 지도부를 따를 수 없다고 판단한 비대위 핵심인물 10여명 중 다수가 사퇴를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전협은 28일 국회와 범의료계와 만나 파업 중단 조건에 대해 논의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정애 보건복지위원장으로부터 "법안 추진을 중단하고 향후 의료 전문가가 포함된 협의기구를 구성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또 파업을 중단할 경우 ▲전공의 및 전임의 형사고발 철회 ▲국가고시 미응시 의대생 구제 등을 보장받았다. 국립대병원협의회을 비롯한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등 범의료계에서는 이행을 함께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전협 비대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직접 합의문에 '원점에서 재논의'를 적시하지 않았고, 이는 일방적 정책 재추진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전협 비대위는 "1차 투표 안건이 '단체행동 지속' 여부가 아닌 '합의문 채택 및 단체행동 잠정 중단'이었다"며 "하지만 회칙에 따라 과반 동의를 얻지 못해 해당 안건은 폐기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업 유지에 대한 찬성이 절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됐음에도 무리하게 재투표에 붙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없었음을 다시 한번 강력히 밝힌다"고 말했다.

대전협 비대위는 또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추진 및 지역 의무복무 관련 법안과 공공의대 설립 정책에 대해 원점에서 재논의를 명문화할 수 없다고 고수하고 있다"며 "의료계를 분노하게 만든 정책 철회 및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 임시방편으로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는 모습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어 "1만6000여 전공의들이 하루라도 빨리 병원과 스승님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의 진실된 태도와 대화를 요청한다"면서 관련 입장문 내용이 사실임을 보증하는 차원으로 긴급비상대책회의 참석자 전공의 대표 103인의 이름을 함께 공개했다.

한편 대부분 의대생과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다음달 1일 예정된 의사국가시험 실기 시험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28일 기준 전체 응시자 3172명 중 약 89%인 2823명이 원서 접수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국가시험 자체는 일단 예정대로 치르려는 분위기"라며 "많은 학생이 응시해 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반장은 "응시 의사를 명료하게 밝힌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고려를 분명히 해줘야 하고,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집단적으로 의사를 밝힌 학생들에 대해서도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과정을 함께 고려해 전체적으로 국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의료계 쪽과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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