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LG화학·SK이노베이션 국내외 소송전 이어져…LG화학 기선제압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중심 ‘배터리 동맹’ 백지화 가능성↑…“상황 주시 중”
그룹 총수간 담판 가능성, 협상 시기 당길 수 있지만 낙관 어려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20년 신년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한스경제=김호연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배터리 동맹’이 백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법적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어서다. 양사가 각각의 입장을 고수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현대차의 전기차 사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벌인 배터리 기술 분쟁 관련 국내 첫 소송에서 LG화학이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3-3민사부는 지난 27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낸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LG화학이 지난해 9월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이 과거 두 회사가 맺은 합의를 위반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문제 삼은 분리막 특허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분쟁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지난해 4월 ITC와 연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조기 패소해 합의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사는 판결이 나오기 전에도 ‘패소 시 무조건 항소’를 내세우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LG화학이 이번 승리로 유리한 고지에 올랐음에도 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ITC 판결에 의한 합의를 포함해 국내에도 아직 여러 소송이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현재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LG 고유의 분리막 안전성강화 기술(SRS) 미국특허 3건, 양극재 미국특허 2건 등 총 5건의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지난해 5월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 방지 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경찰에 형사 고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LG화학에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와 영업비밀 침해가 없었다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는 등 양 사의 소송전은 꼬리를 물고 있다.

현대차그룹, LG-SK 사이에서 눈치?…“상황 주시 중”

(왼쪽부터)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논란을 둘러싼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는 현대차그룹도 눈치를 보게 됐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왕래하며 ‘K-배터리 동맹’ 결성에 대한 기대감을 모았지만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 되면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5월 13일 이재용 부회장, 6월 22일 구광모 회장, 7월 7일 최태원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세 그룹의 총수와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들은 현대차와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전기차·배터리 관련 공장과 연구시설을 방문한 것을 감안하면 각 회사 간 밀접한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7월 청와대가 개최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2025년 전기차를 100만대 판매해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상반기 기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6.5%로 5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전환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경쟁력을 기르는 게 필수다. 따라서 해당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배터리 3사와 맞손을 잡으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각에서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가 국가 배터리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의 소송 전쟁이 불거지면서 현대차그룹이 꿈꿨던 협력체 구성은 당분간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에 핵심 기술을 제공해야 하는 두 업체 간 분쟁이 현재보다 악화될 경우 현대차그룹은 양측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관측을 일축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주시하는 중이지만 두 업체간의 갈등에 현대차그룹이 나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시장에 합리적이고 경쟁력 있는 상품이 나오면 채택해 사용하는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핵심은 ITC 합의금 협의…타결 가능성 적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배터리 분쟁이 타결되려면 미국 ITC 조기 패소 판결로 인해 SK이노베이션이 지급해야 하는 합의금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현재 LG화학은 수조원을, SK이노베이션은 수천억원을 합의금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수차례 실무 협상이 이어졌지만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늘 10월 ITC로부터 미국에서 배터리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압박하며 “소송과 관련하여 합의는 가능하나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이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사는 ITC와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 민사소송 등 배터리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한 법적 절차를 끝까지 성실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이날 판결과는 별개로 배터리 산업과 양사의 발전을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뚜렷한 타협점 마련이 쉽지 않은 가운데 그룹 총수인 구광모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총수 담판’이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두 회사는 “실무 협상도 진척이 안된 상황에서 그룹 총수들이 계열사 간 분쟁에 관여하는 것은 과하다”며 난색을 표현했지만 “담판이 이뤄지면 협상이 타결되는 시기도 보다 앞당겨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담판 결과도 낙관하게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승기를 잡은 LG그룹의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어서라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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