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바라보는 윌리엄스 감독.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그라운드 위에선 누구보다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를 줄여 부르는 인터넷 용어)’하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영락없는 ‘유쾌한 아재’다. 맷 윌리엄스(55) KIA 타이거즈 감독의 두 얼굴이다. 

윌리엄스 감독은 경기 중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선수가 실책을 범하거나 아쉬운 플레이를 해도 인상을 잘 찡그리지 않는다. 팀이 앞서고 있을 때나 극적인 한방이 나올 때도 좀처럼 웃지 않는다. 항상 무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도자다. 다만, 매 순간 ‘최선’과 ‘집중’을 강조한다. 또, 프로 선수의 자세와 기본을 중요하게 여긴다. 

경기 중에는 강인한 호랑이 같지만, 그라운드 밖에선 ‘소통의 달인’이다. 선수들은 물론 코치진, 프런트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시즌 전 스프링캠프 때 윌리엄스 감독은 통역인 구기환(34) 씨의 도움을 받아 54명에 달하는 선수의 이름을 하나하나 공부했다.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선수를 부를 때는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윌리엄스 감독은 당시 본지와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수훈선수를 발표하는데 현(HYUN)처럼 HY, HW인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애를 먹는다. 가끔 발음이 부정확하면 선수들이 뒤에서 웃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선수들을 존중하기에 더 열심히 발음을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윌리엄스(왼쪽) 감독. /OSEN

윌리엄스 감독과 KIA 선수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격의 없이 소통한다. KIA 선수들은 “감독님이 편하게 해준다”고 입을 모은다. 윌리엄스 감독은 “감독실 문은 항상 열려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선수가 유창하지 않은 영어 실력에도 윌리엄스 감독과 대화 하려고 노력한다. 그도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농담을 하고 조언을 건넨다. 윌리엄스 감독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선수들은 영어로 “굿모닝”이라고 화답한다. 훈련할 때 직접 배팅볼을 던져준다거나 일찍 경기장에 출근해 각 구장 관중석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하는 모습도 선수들에게 귀감이 된다. 

내야수 나주환(36)은 “윌리엄스 감독은 경기장에서만큼은 집중하시는 편이다. 다만 경기장 바깥에선 흥도 많고 선수들을 편안하게 대하신다.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농담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최근 KIA로 이적한 김태진(25)도 “KIA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소통을 잘하는 윌리엄스 감독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KIA 루키헤이징 데이. /KIA 제공

윌리엄스 감독은 이른바 ‘흥부자’이기도 하다. KIA 선수단은 최근 ‘타이거즈 에너자이징 데이’를 진행했다. 메이저리그에선 정규시즌 막판 신인선수에게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혀 활보하게 하는 '루키 헤이징(Rookie hazing)'과 비슷한 행사로 윌리엄스 감독의 제안으로 이벤트가 열렸다. 선수들은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했다. 고졸 신인 정해영(19)은 영화 어벤져스의 캐릭터 '타노스', 홍종표(20)는 헐크, 박민(19)은 아이언맨, 김규성(23)은 스파이더맨, 오선우(24)는 유치원생으로 분장했다. 윤인득, 유재민 트레이닝 코치와 박준성, 이연준 통역 등 선수들을 돕는 프런트 직원들도 분장에 참여했다. 분장의상을 착용한 선수들은 처음에는 차림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셀피를 찍거나 다른 선수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행사를 즐겼고, 서울 출발 직전에는 전체 선수단이 기념촬영도 했다.

고된 수도권 6연전을 떠나기 전 웃음으로 지친 선수단 분위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리자는 차원에서 열린 이 행사는 팬들에게도 색다른 즐거움을 안겼다. 윌리엄스 감독은 "이번 행사가 젊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팀에 새로운 활력이 되길 바란다"며 "매년 이 같은 행사를 통해 활기 넘치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제리 로이스터(68ㆍ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트레이 힐만(57ㆍ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그런 것처럼 윌리엄스 감독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원팀'을 만들고 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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