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실효성 논란 출입명부, 개인 사생활 침해로 번져

[한스경제=이상빈 기자] 늦은 밤 누군지도 모르는 이성에게서 온 연락을 받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연락처를 알아냈고 다짜고짜 만남을 요구한다면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이 한창이던 이달 초 벌어진 일이다. 그 중심엔 다중이용시설 방문 시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게 한 코로나19 출입명부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침을 내세우며 식당, 카페, 베이커리를 포함한 일반음식점 내 명부 작성을 의무화했다. 업장에 따라 수기 작성 또는 애플리케이션 QR코드 입력 방식을 택했다. 유통가는 방문객 감소로 이어질 명부 작성 의무화에 반감을 보였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시 영업을 종료하는 것보다 낫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방침을 따랐다. 명부와 관련해 소비자의 반발도 있었다. 아무리 4주 뒤 파기한다 해도 정부가 규정한 일반음식점을 방문할 때마다 개인정보를 남기는 일이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동선이 개인정보와 함께 카페나 식당 등 여기저기에 기록된다는 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부의 감시 아래 놓인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충분하다.

문제는 정부가 아닌 개인이 다른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또다른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6일 경기도 평택시 한 프랜차이즈 카페 코로나 명부에서 여성 A 씨 이름을 발견하고 연락한 남성 B 씨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첫 연락에 무대응으로 반응하자 이튿날 “외로워서 연락했다. 소주나 한잔 사려 했다”는 B 씨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A 씨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은 B 씨는 “신고를 없던 일로 해달라”면서 “한국 남자가 문자질 몇 번 했다고 상황을 이렇게 만드냐”고 도리어 A 씨에게 선처를 요구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도입한 명부가 개인의 악용으로 이어진 사례다. 정부의 명부 작성 의무화는 도입 당시부터 유통가를 혼란에 빠뜨리더니 이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까지 낳았다.

A 씨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피해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11일 일반음식점을 포함한 다중이용시설 수기 출입명부에 이름을 적지 않도록 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전화번호와 주소지 시ㆍ군ㆍ구만 쓰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에 의문이 달린다. 가짜 전화번호를 남길 경우 당사자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까지 쓰게 했던 이전에도 ‘가짜 수기’ 논란이 불거졌다. 현실적이지 못한 정책이 방역을 위한 일인지, 이 같은 명분을 핑계로 수도권 시민을 감시 아래 두려는 발판인지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A 씨 사례에서 알 수 있는 사생활 침해는 부작용이다.

잉글랜드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사망하기 1년 전인 1949년 희대의 역작 ‘1984’로 디스토피아 미래 세계를 그렸다. 소설 속 ‘빅브라더’가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는 전체주의의 민낯을 경고한 은유다. 오웰은 자유가 억압당하는 전체주의 사회 문제를 일찍이 소설로 역설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을 감시하고 여러 문제를 노출한 출입명부 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정부의 심사숙고가 필요한 때다.

이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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