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경미사고 티끌아냐…제도 개선 시급해"
손해보험업계가 경미사고 증가를 손해율 상승, 보험금 인상 요인의 주범으로 꼽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손해보험사가 경미사고와 경상환자(5일 이상 3주 미만의 치료를 받은 환자)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합당한 진료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과잉진료로 의심되는 한방진료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보험사가 과잉진료가 의심돼도 진료비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경미사고 증가가 보험사 손해율 상승은 물론 보험금 인상 요인의 주범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4일 보험연구원의 '교통사고 상해유형의 변화와 대인배상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미사고와 경상환자가 증가하면서 대인배상 보험금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한 자동차보험 보험금은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4.9% 증가한 가운데, 부상 환자에게 지급된 대인배상 부상보험금은 연평균 12.4% 늘었다. 1인당 치료비는 한방 치료비를 중심으로 상승하고, 합의금인 향후치료비는 치료비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부상보험금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경미사고와 경상환자의 증가"라며 "경상환자임에도 치료비와 합의금(향후치료비)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인배상 부상보험금 증가세도 확대됐다" "또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는 가운데 현재의 대인배상 보험금 증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연간 2% 내외의 보험료 조정압력이 형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는 경미사고로 인한 과잉진료가 보험금 인상의 주범이라고 하소연한다. 특히 4년간 3배 가까이 급증한 한방진료비에 과잉진료가 존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도별 자동차보험 진료비 구성' 현황을 보면 2015년 3576억원(비중 23%)이던 한방진료비는 매년 20~20% 급증하더니 지난해에는 9569억원으로 늘어났고, 총 진료비 대비 비중도 43%까지 확대됐다. 

자동차보험 보험금, 교통사고 건수와 피해자 현황. /보험연구원 제공

업계에서는 한방의료기관은 양방의료기관에 비해 개원(투자)금액, 운영 및 유지비용 등이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경상환자에 대한 평균진료비가 2배 이상 높은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이는 진료비를 보험사가 전액 부담하는 자동차보험 환자의 특성을 이용해 일부 한방의료기관이 과잉치료를 권고(단순 염좌환자 등에게 첩약, 약침술, 추나요법, 한방물리요법 등을 한꺼번에 제한없이 동시시술)하는데 따른 결과로 판단하고 있다.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진료비가 높은 한방치료에 과잉진료가 존재한다고 본다"면서 "경미사고로 인한 한방 과잉치료가 늘면서 경미사고가 보험사 손해율은 상승은 물론, 보험금 인상 요인 주범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수은 현대교통기후환경연구소 책임전문위원은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의 경우 지속적인 증가로 자동차 보험 손해율 악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명료한 수가 기준 절차 부재로 비급여(한방진료) 과잉진료가 존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과잉진료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문조사 자료도 나왔다. 

시민단체 '소비자와함께'가 최근 2년 이내 교통사고 후 한방 진료 경험자와 일반 소비자 1212명을 조사한 결과 자동차보험으로 한방진료를 받은 환자 4명 중 3명은 한약을 일부 버리거나 방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만약 교통사고 치료시 첩약 비용을 보험회사에서 지급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지불해야 한다면, 첩약을 어느 정도 받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60.5%는 "아예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피해자가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보험사는 과잉진료가 의심되도 막을 법적 장치가 없다"면서 "'아프다'라는 것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울 뿐더러 병원 역시 수익을 위해서는 진료를 권고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보험의 근거법인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손해배상의 범위는 민법을 따르는데 민법상 손해배상은 통상의 손해를 보상하게 돼 있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기가 의심돼 보험 가입자의 질환에 대해 전문의의 소견을 묻는 의료자문제도가 있지만, 업계는 경미사고·경상환자에 적용하는 것은 수지타산에 맞지 않다고 한다.  

연도별 자동차보험 진료비 구성. /손해보험협회 제공

결국 경미사고 증가는 한방진료비 급증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으로 연결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소비자와 업계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용식 위원은 "단기적으로 치료 기간과 치료비를 제한이 없어 대인배상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치료비전액지급보증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중장기적으로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근거 중심의 표준임상진료지침'에 따른 경상환자 판단 기준과 치료 방법, 기간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에 일방적인 책임을 지우는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진단에 맞는 합리적인 치료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캐나다 등 주요국은 경상환자 치료 가이드라인과 보상기준을 정립해 교통사고 상해유형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주는 자동차보험법에 경미상해 규정(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지난해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사고발생 후 환자는 초기 진단 후 1주, 3주, 6주, 12주의 4단계 기간 동안 단계별로 의료전문가로부터 회복여부를 평가받고 법에서 규정한 치료 방법과 처치 횟수에 따라 치료를 받는다. 단계가 높아지거나 12주 이상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사와 보험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영국은 민사소송법을,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경미사고 대인보상 기준을 강화했다. 영국 정부는 제도개선으로 116억파운드(약 17조6000억원)의 경제적 효과와 대인배상 관련 분쟁 감소를 예상하고 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보험료 안정 효과를 보고 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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