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왼쪽)가 메이저리그 최초의 승부치기에서 주루사 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이정인 기자] 유명 야구 만화 'H2'의 주인공 구니미 히로의 명대사 중 하나는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를 가르쳐 드리지요”이다. 야구 전통론자와 올드팬들은 축구나 농구와 달리 ‘시간제한이 없는 승부’를 야구만의 매력으로 꼽아왔다.

올 시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시행 중인 연장 승부치기는 이러한 정서에 정면으로 맞서는 규정이다. 수년 전부터 ‘스피드 업’을 강력하게 추진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 시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개막이 늦어지자 경기 시간 단축과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전례 없는 승부치기를 도입했다. 

이미 마이너리그에서는 2018년부터 연장에 돌입하면 무사 2루 상황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승부치기를 펼쳤다. 국제대회에선 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 처음 시범 운영됐고, 이후 베이징 올림픽과 광저우 아시안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에서 폭넓게 활용됐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연장 승부치기는 10회초 무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시작한다. 2루 주자는 해당 이닝 선두타자의 앞 타순 선수가 된다. 다만, 지명타자 소멸로 전 타자가 투수일 때는 그 앞의 선수가 주자로 나서게 된다. 

지난 7월 25일(이하 한국 시각) 로스엔젤레스(LA) 에인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개막전에서 빅리그 최초의 승부치기가 나왔다. 두 팀이 9회까지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10회부터 승부치기가 시작됐다. 9회초 마지막 타자였던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26)는 뒤늦게 2루 주자인 것을 인지한 뒤 급하게 겉옷을 벗고 헬멧을 쓴 채 2루로 뛰어나가 웃음을 자아냈다.

이닝 시작부터 2루에 서있는 ‘유령주자’가 득점하면 투수의 자책점으로 기록될까. LA 다저스의 켄리 잰슨(33)은 지난 7월 라디오 방송서 “승부치기에서 실점하면 내 자책점으로 기록되는 것인지 궁금하다"면서 "투수들은 이 점수가 자신의 자책점으로 인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동으로 출루한 2루 주자는 투수의 자책점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주자의 득점은 비자책점 처리된다. 하지만 결승점을 내준 투수는 패전으로 기록된다. 연장 이닝에 올라오는 투수는 큰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승부치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투수 마이크 클레빈저(30)는 지난 7월 26일 팀이 승부치기 끝에 패하자 "새로운 연장전 규칙(승부치기)은 내가 본 규칙 중에 제일 형편없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불펜진이 2루에 주자를 두고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나"라며 투수의 고충을 호소했다.

승부치기 규정을 비판한 다저스 커쇼. /연합뉴스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32)도 “승부치기는 진짜 야구가 아니다”라며 “올 시즌은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이와 같은 규칙 없이 정상적으로 경기를 진행했으면 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승부치기를 ‘스피드업’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데이브 로버츠(48) 다저스 감독은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몇 번 해보니 정말 마음에 든다. 경기 시간도 짧고, 팬들부터 감독과 선수들까지 전략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매체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승부치기는 야구의 전통을 무시하는 규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부치기로 인해 더욱 야구에 집중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서 “더는 15이닝 야구를 보지 않아도 된다. NFL과 NHL이 이미 수십 년 전 연장전 규정을 수정했고 성공을 거뒀다. ML도 이번 기회를 통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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