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AP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이정인 기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건강하게 돌아온 김광현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데뷔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빅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새겼다.

김광현은 15일(한국 시각) 밀러파크에서 열린 2020 메이저리그(MLB) 밀워키 브루어스와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6탈삼진 3볼넷 3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펼쳤다. 이닝과 탈삼진 모두 빅리그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기록이다. 평균자책점도 종전 0.83에서 0.63으로 더욱 끌어내렸다.

김광현은 1-0으로 앞선 연장 8회말에 라이언 헬슬리(26)와 교체됐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7이닝 더블 헤더를 진행한다. 8회부터는 연장 승부치기를 펼친다. 세인트루이스는 무사 주자 2루에 두고 진행된 연장 8회초 토미 에드먼(25)의 중전 적시타로 균형을 깼지만, 8회말 불펜의 방화로 1-2로 역전패해 김광현의 승리는 날아갔다.

이날 김광현과 선발 맞대결을 펼친 KBO리그 출신 조시 린드블럼(33) 역시 5이닝 동안 3안타 무사사구 6삼진 무실점으로 세인트루이스 타선을 틀어막았다. 
 
◆밀워키 잠재운 커터성 패스트볼과 송곳 제구
 
아팠던 선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날 김광현의 최고 구속은 시속 92.2마일(148.4㎞)이었다. 포심 패스트볼 45개, 슬라이더 27개, 커브 11개, 체인지업(투심) 4개를 던졌다. 인터벌이 짧은 공격적인 투구와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제구력이 초반부터 빛나면서 경기를 지배했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후한 주심의 특성을 파악한 후 결정적인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 내외곽을 공략하는 영리한 투구를 보여줬다. 특히 타자 내외곽의 무릎 쪽 스트라이크 존에 예리하게 걸치는 빠른 볼이 일품이었다. 이날 김광현의 패스트볼 움직임은 커터(컷패스트볼)에 가까웠다. 5회 2사 후 몸쪽 포심 패스트볼은 아비사일 가르시아(29)의 방망이를 두 동강 내기도 했다. 미국 매체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는 “부상에서 돌아온 김광현이 밀워키가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송재우(54) 본지 메이저리그 논평워원은 “빅리그 데뷔 후 가장 제구가 잘된 경기였다. 평소처럼 빠르고 느린 슬라이더가 아닌 커터성 움직임을 보이는 슬라이더를 던진 게 주효했다. 존을 넓게 활용하는 포수 야디어 몰리나의 영리한 리드를 잘 따라갔다”고 평가했다. 
 
◆김광현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
 
김광현은 지난 5일 시카고 컵스전 등판을 하루 앞두고 극심한 복통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다. 신장 경색 진단을 받은 그는 6일 퇴원했고, 이후 약물치료를 받으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면서 캐치볼과 불펜 투구로 다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 김광현은 이날 13일 만의 복귀전을 치렀다.

경기 중 해프닝이 있었다. 김광현은 4회 올란도 아르시아(26)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에게 손짓했다. 볼배합을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몰리나가 마운드로 걸어가자 통역 최연세 씨는 물론이고 마이크 매덕스(59) 투수코치와 크리스 콘로이 트레이너도 달려 나왔다. 세인트루이스 더그아웃은 김광현이 몸에 이상을 느꼈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이 상황을 묘사하며 “김광현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고 손을 내저었다.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고 전했다.

김광현은 빼어난 구위와 이닝 소화 능력을 증명하며 건강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건강에 관한 질문에 "돈 워리(Don't worry)"라고 답하며 웃으며 "건강을 자신한다. 갑작스러운 부상이 생기지 않는 한,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내 건강을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된다. 투구 중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공식 SNS

◆역사를 쓰는 김광현, 신인왕 향해 순항
 
경이로운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광현은 이날 역투로 4경기 연속이자 24이닝 연속 비자책 행진을 이어갔다. 선발로 등판한 5경기에선 평균자책점 0.33의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다.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김광현의 첫 5경기 선발등판 평균자책점 0.33은 빅리그 기록 공식집계(1912년) 이후 역대 2위”라고 소개했다. 이 부문 1위는 1981년 LA 다저스 소속이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0.20이며, 그해 13승 7패와 평균자책점 2.48로 사이영상과 신인왕을 석권했다. MLB.com은 “김광현은 공식집계 이후 내셔널리그에서 처음으로 4경기 연속 ‘5이닝 이상 투구, 3안타 이하 허용, 비자책’ 기록을 작성한 첫 번째 투수”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28.2이닝을 던진 김광현은 규정이닝은 채우지 못했지만, 25이닝 이상 던진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심지어 유일한 0점대 평균자책점이다.

신인왕 레이스에 박차를 가했다. 이날 경기 후 세인트루이스는 구단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광현과 몰리나의 하이파이브 사진을 게재하며 올해의 신인?(Rookie of the Year?)'이라고 적었다.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10일 내셔널리그 신인왕 후보를 소개하며 김광현을 5위로 평가한 바 있다. 남은 등판에서 규정이닝을 채울 가능성이 희박해 수상 가능성이 작지만, 현재성적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송재우 위원은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은 이닝이 적어서 신인왕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 김광현이 남은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다면 신인왕 수상 가능성도 확 커진다.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고 평균자책점을 유지한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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