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선수단. /OSEN

[한국스포츠경제=이정인 기자] ‘승수 자판기’ SK 와이번스는 잊어라. 이제는 ‘고춧가루 맛집’으로 변신한 비룡군단이다. 

SK는 16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7-6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후반까지 패색이 짙었으나 3-6으로 뒤지던 8회 1점을 따라갔다. 9회엔 최지훈(23)의 안타와 상대 실책으로 만든 1사 1,2루에서 제이미 로맥(35)과 정의윤(34)의 연속 적시타로 6-6 동점을 만들었다. 김강민(38)의 고의4구로 이어진 1사 만루에서 박성한(22)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7-6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어 9회말 서진용(28)이 KIA의 공격을 실점 없이 막아냈다.

이날 승리로 6연승을 질주했다. SK의 올 시즌 최다 연승 기록이다. 지난 12~13일 롯데자이언츠와 2연전을 싹쓸이한 데 이어 15~16일 광주 원정에서도 2승을 수확하며 갈 길 바쁜 두 팀에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9월 초만 해도 SK의 상황은 우울했다. 6일 염경엽(52) 감독의 재입원으로 박경완(48) 감독대행이 다시 지휘봉을 잡는 등 악재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9일 인천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인 16개의 볼넷을 내주며 치욕적인 4-13 대패를 당했다. 구단 역대 타이 기록인 11연패에 다다랐다. 꼴찌 추락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중심타자 한동민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벼랑 끝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10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부터 ‘농군 패션(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는 스타일)’으로 각오를 다진 SK 선수들은 이후 거짓말 같은 6연승을 일궈냈다.

최근 SK의 경기 내용을 보면 왕조시절 향기가 난다. SK는 지난 시즌 강력한 선발진을 앞세워 정규시즌 88승을 올렸다. 올해는 김광현과 산체스가 해외 진출로 팀을 떠났고, 외국인 투수 농사에 실패하면서 선발진이 붕괴했다. 선발진의 붕괴는 불펜의 과부화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데 최근 SK의 앞문이 단단해졌다. 최근 6승 중 5번이 선발승이다. 박종훈(29)이 10일 한화전서 7이닝 1실점을 기록했고, 11일 한화전서는 문승원(31)이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이건욱(25)은 12일 인천 롯데전서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외국인 투수 리카르도 핀토(26)도 13일 롯데전서 6이닝 1실점으로 각성했다. 새롭게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조영우(25) 역시 15일 KIA전서 6이닝 무실점의 쾌투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뒀다. 16일 KIA전에선 박종훈이 5실점했지만 5회까지 버텨줬다. 이 기간 SK의 선발 평균자책점은 2.00으로 리그 1위다. 안정감을 찾은 선발진 덕에 부담을 던 불펜도 평균자책점 2.50(2위)으로 환골탈태했다.

SK 최지훈(왼쪽). /OSEN

뒷심도 생겼다. 예전에는 경기 초반부터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선수단을 감싼다.

SK는 100패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있다. SK는 16일까지 110경기에서 38승 71패 1무를 기록했다. 남은 34경기에서 6승 이상만 올려도 100패는 면한다. 상워권 팀들의 먹잇감이던 SK는 이제 치열한 순위 싸움의 향방을 결정 짓는 ‘캐스팅 보트’를 쥘 전망이다.

SK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 남은 시즌은 내년을 위한 희망을 찾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올 시즌 외야수 최지훈, 투수 김정빈(27)과 이건욱 등 젊은 선수들이 주축으로 성장했다. 지난달 트레이드로 합류한 이적생 오태곤(29)도 맹타를 휘두르며 힘을 보탠다. 최대한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경기를 펼치면서 리빌딩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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