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산업은행·기업은행, 허술한 대출 시스템·직원 부정부패 '도마 위'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허술한 대출 시스템과 직원의 부정부패가 잇따라 드러나며 국책은행 위신을 떨어뜨리고 있다. /기업은행,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산업은행은 단순한 기업분류 착오라는 이유로 대기업에 중소·중견기업 전용 상품으로 돈을 퍼주고, 기업은행 직원은 사적 이득을 위해 셀프대출은 물론 금품을 수수하기까지 했다. 정부가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별볍에 의해 설립한 은행인만큼 시중은행보다 엄격한 관리는 물론 무거운 책임감까지 요구되는 국책은행의 민낯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허술한 대출 시스템과 직원의 부정부패가 잇따라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산업은행 직원은 단순 실수로 대기업에 혜택·수장은 정치적 건배사 논란

산업은행은 지난 5년간 중소·중견기업 전용 대출상품을 대기업에 3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실행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상호출자제한집단에 해당되는 기업 25곳에 3116억원에 달하는 중소중견기업 전용상품을 대출해줬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계열사 자산을 다 합쳐서 10조원이 넘는 기업 집단으로 사실상 대기업 집단을 의미한다. 해당 기업은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기업으로 산업은행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대기업 집단에 ▲전략특별부문 신산업(운영)자금 ▲서비스산업(운영)자금 ▲사업경쟁력강화(운영)자금 등 중소중견기업 전용 대출상품으로 기업별로 많게는 700억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기업집단별로 OCI그룹과 현대중공업 소속 기업에 각각 700억원을 대출해 가장 많았다. 이어 SK그룹에 611억원, 셀트리온에 45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중소중견기업으로 자격을 인정받아 0.3%의 금리우대 혜택을 받아 이자감면액만 11억1100만원에 달한다.

대출심사 과정에서의 부실한 시스템이 문제였다. 25개 기업에 잘못된 대출이 이뤄진 데 대해 상품지원 요건 착오가 13건, 기업규모 분류 착오가 12건으로 밝혀졌다. 일례로 2019년 1월 대출을 받은 A기업은 현대중공업 소속 계열사임에도 산업은행은 상품지원 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700억원의 대출을 승인했다.

송재호 의원은 “중소중견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을 대기업군의 기업이 영위한 만큼 중소기업은 혜택을 보지 못한 것”이라며 "이는 대기업에 대한 부당한 지원이자 특혜"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해당 대출 건들이 산업은행의 허술한 대출 심사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문제”라며, “해마다 발생하는 대출 착오를 개선하기 위한 심사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대출심사 과정에서의 '단순 실수'였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이었던 곳이 대기업으로 전환돼 조건 변경이 안된 건이 있는 등 여신 취급 시 착오, 실수가 있었다"며 "감사원에서 개선 요구 통보를 받았고 현재 모든 조치를 완료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잘못된 대출 심사를 진행한 지점, 임직원 등에 대한 인사 징계는 없었다. 대기업에 특혜 아닌 특혜를 제공했으나 재발방지대책을 고시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수장도 입방아에 올랐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공개 석상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장기 집권'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건배사로 빈축을 샀다.

이 회장은 지난 22일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전기 만화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 전 대표가 하신 말씀 중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 ‘우리(민주당)가 20년 (집권)해야 한다’고 한 것"이라며 "제가 '가자!'고 외치면 모두가 '20년!'으로 답해달라. 30년, 40년을 부르셔도 된다"고 건배사를 제안했다.

국책은행 수장이 여당의 장기 집권을 바라는 건배사는 부적절하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이 회장은 24일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앞으로 발언에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산업은행, 상출집단 기업의 중소중견기업 대출상품 이용 내역(좌), 기업은행 자체감사 결과 조치사항. /송재호, 윤창현 의원실 제공

기업은행 직원, 정부 기조 역행한 셀프대출부터 금품수수에 횡령까지

기업은행 역시 국책은행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직원 셀프대출'에 이어 '지점장 금품수수', '고객예금 횡령'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이 입수한 ‘2019~2020 기업은행 내부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경북의 한 지점에서 근무한 A지점장은 고객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아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A씨는 한 개인 고객에게 업무 상담과 거래 편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계좌로 수십차례에 걸쳐 20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B대리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 4월에 걸쳐 총 5개월 간 고객 여러 명의 거치식예금을 임의로 중도해지한 뒤 수십억원을 가상화폐 투자와 타행 대출금 상환 등의 목적으로 수십억원을 횡령했다. C대리는 지난해 1월부터 3월까지 고객명의의 예금 등을 고객의 동의없이 임의 해지해 수백여만원 횡령했다.

이달 초에는 D차장이 지난 2016년 3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가족 명의를 앞세워 총 29건, 75억7000만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D차장이 담보대출을 통해 매입한 부동산의 평가차익은 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D차장이 부동산을 얼마나 처분해 얼마의 차익을 챙겼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해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한 한 시기에 국책은행의 한 직원은 '셀프대출'을 통해 정부 기조에 반하는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점에서 기업은행은 '정부 기조에 반하는' 허술한 대출 관리·감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윤종원 행장은 취임 이후 임직원들에게 '고객 신뢰 회복'을 경영 우선순위로 두고 "윤리헌장을 기본가치로 삼아 청렴도 1등급 은행으로 도약하고 나아가 '금융사고·부패 제로(zero)'를 실현하자"고 신신당부했으나 공염불에 그친 모양새다.

산업은행·기업은행 '금융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 등급 하락 불가피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일련의 행보는 '금융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매년 실시되는 '금융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지표를 보면 기관의 목표달성 등을 위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관 내부관리를 하는지를 중심으로 평가 '경영관리(40점)',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자금공급 등을 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정책금융 등을 평가하는 '주요사업(60점)'으로 나뉜다.

최근 불거진 국책은행의 금융 사건·사고는 경영관리부문 평가지표 ▲경영전략 수립 및 실행노력 ▲합리적인 인사관리 ▲내부성과평가 적정성 ▲효율적인 조직관리(이상 3점) ▲고객만족도 ▲정부 권장정책 대응 및 업무지원(이상 2점) 등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평가가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항이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된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내부적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3년 이후 7년 연속 A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산업은행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A등급을 받아왔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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