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선수들. /OSEN

[한국스포츠경제=이정인 기자] “All of my Life(내 인생의 모든 것).”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올 시즌 슬로건이다. ‘전자랜드 팬들은 전자랜드 농구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전자랜드 구단은 “우리 팬들을 위해 뛰겠다고 슬로건을 정한 만큼 이번 시즌 우리 팀의 모든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설명했다. 유도훈 감독은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인생을 걸고’라는 표현으로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전자랜드는 프로농구 최고의 ‘다크호스’ 팀이다. 다른 팀처럼 이렇다 할 스타 선수는 없지만,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을 앞세워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도훈 감독이 2010년 정식감독으로 승격 된 이후 전자랜드가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한 적은 10년간 2015-2016시즌 딱 한 번뿐이다. 우승은 없었으나 정규리그 2위 두 번에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한 번 등을 달성하며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농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전자랜드는 2020-2021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앞서 지난 8월 전자랜드는 올 시즌까지만 팀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3년 8월 인천 SK를 인수해 프로농구에 뛰어든 전자랜드 모기업이 홍보보다 경영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농구단 운영을 접기로 했다. 이번 시즌이 전자랜드의 이름을 달고 뛰는 마지막 순간이다.
 
이런 전자랜드의 사정은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당시 시카고 불스)의 마지막 우승 시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에 빗댈 만하다. 물론 단장의 무리한 리빌딩 시도와 팀 구성원 사이의 불화가 원인이 된 불스의 ‘라스트 댄스’와 전자랜드의 상황은 다르다. 또, 1997-1998시즌 당시 최강 전력을 보유했던 불스와 달리 2020-2021시즌 전자랜드의 전력은 상위권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강상재가 입대했고, FA(자유계약선수) 김지완이 팀을 떠났다. 없는 살림에 전력 보강은’ 언감생심’이었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 70%도 채우지 못할 만큼 어렵게 선수단을 구성했다.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도 유 감독과 전자랜드 선수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꾼다. 10일 서울 SK와 홈 개막전을 앞두고 만난 유 감독은 “상대보다 먼저 뛰고, 먼저 생각하고, 먼저 부딪치는 기본적인 것들을 하면서 우리의 농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저뿐만 아니라 코치들, 주장 정영삼이 선수들을 잘 다독이면서 한 마음으로 시즌을 치르다 보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팀 사정이 어려운데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선수들에겐 올 시즌이 기회다. 다른 팀보다 한 발 더 뛰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다”고 강조했다.
 
인생을 건 전자랜드는 개막 2연전서 우승후보들은 차례로 제압하며 저력을 보여줬다. 9일 개막전에서 안양 KGC 인삼공사를 98-96으로 꺾었고, 10일엔 우승후보 1순위로 평가 받는 SK에 87-74 완승을 거뒀다. 특히 전자랜드는 두 경기 연속으로 90대 득점을 올리며 기대 이상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9~10일 개막 2연전을 치른 팀 중 유일하게 2승을 챙기며 선두권으로 나섰다.
 
국내 선수들이 고른 활약을 펼쳤다. 맏형 정영삼은 KGC인삼공사전에서 3쿼터에만 혼자 14점을 몰아치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고, SK전에서도 4쿼터 승부처에서 3점슛을 연속 3방 터뜨리며 팀 분위기를 주도했다. 김낙현, 전현우, 이대헌 등 젊은 피들도 2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외국인 듀오 에릭 탐슨과 헨리 심스도 정상 컨디션이 아님에도 SK전에서 각각 11점 11리바운드, 10점 11리바운드로 동반 더블더블을 올리며 국내 선수들과 조화를 이뤘다.
 
전자랜드는 해마다 시즌 전에는 하위권으로 지목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농구로 여러 차례 기적을 연출했다. 정영삼은 “전자랜드를 가슴에 달고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안타깝다. 후배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해주고 있다.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농구에 전념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전자랜드가 마지막 시즌 또 한 번 돌풍을 일으키며 농구팬에게 뜨거운 안녕을 고할지 지켜볼 일이다.

인천=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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