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양지원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 영화계가 주춤한 지 어언 9개월이 흘렀다. 뚝 떨어진 극장 관객수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자 투자배급사들은 극장 상영이 아닌 넷플릭스 공개로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지난 3월 ‘사냥의 시간’은 한국영화 최초로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택한 바 있다. 이어 ‘콜’ ‘낙원의 밤’, 대작 ‘승리호’까지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 중이다. 한 영화의 극장 상영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손익분기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왜 넷플릭스인가

영화 '승리호' 스틸./메리크리스마스 제공.

극장 개봉을 앞뒀던 한국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택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극장 관객수가 70%나 급감한 상황에서 단순히 개봉으로 수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영화의 수익구조는 극장 상영이 70%를 차지하고, 이후 부가 판권(VOD 서비스 등)으로 얻는 수익이 30%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극장 상영은 수익에 필수적인 사항이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영화계는 몸살을 앓았다. 개봉을 앞뒀던 영화들은 올 초에는 코로나19의 회복세를 기다렸으나 상황이 장기화되자 결국 국내에서 큰 수익을 내고 있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통해 제작비라도 회수하려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콜’ ‘낙원의 밤’ ‘승리호’에 제작비 이상의 계약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은 박신혜와 전종서가 출연한 스릴러물이며 ‘낙원의 밤’은 지난 달 열린 베니스영화제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다. ‘승리호’는 송중기, 김태리 등이 출연하는 우주 SF 대작으로 제작 단계부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해당 영화들의 투자배급사와 넷플릭스 양측은 “논의가 진행 중일 뿐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업계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승리호’는 제작비만 240억 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손익분기점은 580만 명대다. 현재 상황 속 극장 개봉만으로 제작비를 거둬들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승리호’와 같은 텐트폴 영화가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 중인 건 그만큼 한국영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승리호’는 또 다른 배급사와 50억 원 상당의 부가 판권 계약을 체결했던 만큼 이해관계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되고 있다.

■ 韓영화 기획 단계부터 투자한 적 없는 넷플릭스, 시리즈물 제작만

한국형 좀비로 해외에서도 유명한 넷플릭스 '킹덤' 시즌2 포스터.

이처럼 넷플릭스가 한국영화에도 깊숙이 발을 들이면서 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시리즈물이다.

한국 좀비물로 주목 받은 ‘킹덤’의 성공을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고요의 바다’ 등을 통해 한국 영화에서 이름 있는 제작진을 영입했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한 편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닌 시리즈물에 해당한다. 짧은 러닝타임을 선호하는 넷플릭스의 방향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넷플릭스는 한 회당 제작비의 10%가량을 책정해 제작자나 창작자에게 지급한다. 예를 들어 회당 10억 원이 드는 6부작 시리즈일 시 6억 원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한국의 시리즈물 제작에 몰두하는 것을 두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흥행만을 노린 차별적 투자라는 이유에서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역시 넷플릭스의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한국이 아닌 미국 작품이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미스터 션샤인’ 등 투자한 한국 드라마가 대박나며 아시아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며 “넷플릭스가 한국의 드라마나 시리즈물 제작에만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넷플릭스가 국내 영화 산업 시장을 잠식시킬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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