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신성장 동력으로 헬스케어, 신약개발, 화이트 바이오 등 주목
대기업들이 신사업의 일환으로 제약 바이오 분야 진출이 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승훈 기자] 제약·바이오 산업이 최근 신(新)성장동력으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을 비롯한 CJ그룹, 한화그룹 등이 과거 중도 포기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도 나온다.

재계에 따르면 최근 제약·바이오 및 헬스케어 사업 추진을 선언한 곳은 ▲현대중공업그룹(바이오·헬스케어 서비스) ▲CJ제일제당(화이트 바이오) ▲오리온그룹(중국 진출) 등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가(家)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은 그룹의 신성장동력의 핵심 3대 축으로 ‘바이오’와 ‘인공지능(AI)’, ‘수소·에너지’를 선정했다.

특히 바이오 사업은 서울아산병원과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병원운영 노하우와 진료 기록, 전문의의 자문내용 등으로 의료 빅데이터를 구성해 서비스 질 향상을 원하는 의료 기관이나 희귀 난치성 질환 극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제약 사업에 뛰어든 경험이 있는 CJ그룹은 바이오를 활용한 친환경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생물자원을 원료로 산업용 소재 또는 바이오 연료 등의 물질을 생산하는 ‘화이트 바이오’을 계획했다. 올해 1조원, 향후 5년 내 약 3배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CJ제일제당은 100% 생분해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인 ‘PHA’를 화이트 바이오 사업의 주력 제품으로 삼기로 했다. 내년 인도네시아 파수루안 바이오 공장에 전용 생산 라인을 신설, 연간 5000톤(t) 규모의 PHA 생산 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CJ PHA’로 글로벌 산업 소재 시장의 패러다임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PHA 외에도 친환경 소재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화이트 바이오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리온그룹은 그간 식품 사업을 통해 구축한 브랜드 파워와 사업 네트워크 등을 바탕으로 중국 제약·바이오 시장에 진출한다.

이를 위해 오리온홀딩스는 중국 국영 제약사 ‘산둥루캉의약(루캉)’과 각각 65%, 35%의 지분을 투자해 ‘산둥루캉하오리요우생물과기개발유한공사’(가칭)를 세운다.

오리온홀딩스는 1차적으로 바이오 진단 전문기업 ‘수젠텍’의 결핵 진단키트와 ‘지노믹트리’의 대장암 진단키트의 중국 허가 및 판매를 추진한다.

오리온홀딩스 측은 “투자비용이 낮은 진단키트 분야부터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합성의약품 신약개발 등 사업을 확대하고, 바이오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글로벌 식품·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각사 제공

대기업 제약·바이오 진출... 명암 엇갈려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은 꾸준히 진행됐다. 그러나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와 긴 개발기간(통상 약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중도하차했다.

실제 CJ그룹은 지난 2018년 한국콜마에 제약 계열사 CJ헬스케어(現 HK이노엔)를 매각한 바 있다.

CJ그룹은 1984년 유풍제약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약 사업에 참여한 이후 2004년 한일약품까지 흡수해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CJ헬스케어의 최대 주주인 CJ제일제당이 기존 사업 부진 및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CJ헬스케어를 한국콜마에 1조3100억원에 매각했다. 

한국콜마에 넘어간 이후 사명은 HK이노엔으로 변경됐으며, 현재 몸값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매각 당시보다 2배 가까이 오른 밸류에이션으로 CJ그룹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화그룹 역시 제약 계열사였던 ‘드림파마’를 지난 2014년 매각했다. 이 회사는 1995년 설립 이후 제네릭(복제약) 사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제네릭 시장의 포화로 저가경쟁이 발생했고, 결국 수익성 하락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미국 알보젠에 넘어갔다.

이밖에 아모레퍼시픽그룹은 2013년 말 태평양제약을 한독에 매각하면서 제약사업을 접었다. 롯데제과도 2011년 롯데제약을 흡수합병하면서 의약품 사업을 포기했다.

 

막대한 자본과 시간 투자…중도 포기 불러

신약개발은 막대한 투자도 중요하지만, 약 10년이라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때문에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장기간 연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성석제 제일약품 대표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6연임에 성공했다. 성 대표는 지난 2005년부터 제일약품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아왔다.

이성우 전 삼진제약 사장 역시 2001년부터 대표이사(6연임)를 맡았고, 지난해 3월 명예롭게 은퇴했다.

이정치 일동홀딩스 회장도 2018년 6연임에 성공하며 최장수 CEO에 올랐다. 이금기 일동제약 명예회장은 지난 1984년부터 26년 동안 대표이사에 9번 선임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국내 30대 그룹 CEO 평균 재임 기간이 3.3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자신의 임기 동안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도 그에 맞는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 SK, LG…제약·바이오 사업 본궤도 올라

삼성과 SK그룹, LG그룹 등은 오랜 기다름 끝에 제약·바이오 산업에 꽃을 피웠다.

삼성은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를 선정했다. 의약품 위탁생산(CMO)·위탁개발(CDO)·위탁연구(CRO) 계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 전문 업체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이 주인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3분기까지의 누적 실적 매출 7895억원, 영업이익 200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매출 7016억원과 영업이익 917억원을 초과 달성한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넘게 증가한 7659억원, 영업이익은 1228억원을 기록하며 창립 8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SK그룹도 제약·바이오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IPO(기업공개) 흥행 돌풍을 일으킨 ‘SK바이오팜(신약개발)’을 비롯해 ▲SK팜테코(원료의약품 생산법인) ▲SK케미칼(합성의약품) ▲SK바이오텍(원료 및 중간체) ▲SK바이오사이언스(백신) ▲SK플라즈마(혈액제제) 등을 보유 중이다.

특히 내년 상장을 앞두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국내 위탁생산 기대감으로 주목받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2002년 지주사에서 분사된 LG생명과학을 독립법인으로 운영했다. 이후 LG화학이 지난 2017년 흡수합병시켰다.

LG화학 생명과학 사업부문의 올 3분기 누적 매출액은 491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 늘었다. 영업이익은 461억원으로 18.8%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독자 기술로 개발한 복합신약과 백신, 당뇨병 치료제, 에스테틱 제품 등이 안정적인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LG화학은 지난해 6월 미국 최대 바이오클러스터인 보스턴에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를 열고 신약 개발 연구개발(R&D)에 힘쓸 전망이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 분야는 차세대 산업으로 정부의 지원, 산업계 혁신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며 ”최근 신수종사업의 일환으로 현대중공업, 오리온 등 주로 대기업에서 제약·바이오분야의 진출이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의약품 개발 자체가 기본적으로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자본력을 갖고 있는 대기업의 진출은 긍정적”이라며 “이 과정에서 대기업 자본과 기존 기업체가 보유한 기술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산업 전반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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