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축구대표팀의 조소현(가운데).

전반전은 스페인이 완벽히 지배했다. 하지만 태극낭자들을 기어코 동점골을 넣었고, 역전승으로 16강 티켓을 잡았다. 그만큼 간절했다. 월드컵 첫 승, 첫 16강 진출이라는 선물을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은 참 힘들게 안았다.

남자축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무관심이 그들의 또 다른 적이었다. 코스타리카과 2차전에서 헤딩골로 한국에 첫 승점을 안긴 전가을(27ㆍ현대제철)은 지난달 18일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눈물로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전가을은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산다는 것이 좀 외로웠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많이 노력했다”는 말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려 축구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어 그는 “지금 흘리는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전가을의 다짐처럼 대표팀은 월드컵 첫 출전 후 12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남자 축구가 첫 본선 진출(1954년) 뒤 48년 만에 16강에 진출(2002년)한 것에 비하면 4분의 1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장 기뻐할 선수 중 한 명은 단연 ‘지메시’ 지소연(24)이다. 영국 첼시 레이디스에서 활약하는 지소연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가 인정하는 축구선수다. 하지만 지소연의 마음 한 편에는 늘 한국 축구가 있었다. 지소연은 “일본도 여자 축구가 인기가 없었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며 늘 대표팀의 선전을 다짐했다.

지난 4월 17년 만에 홈에서 열린 A매치 러시아와의 친선경기에서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주문을 되뇌었던 그다. 1년에만 수 차례 열리는 남자축구 A매치에 비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홈경기에서 지소연은 한국여자축구의 힘과 매력을 전부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랬던 지소연은 당시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 끝에도 결국 결승골을 넣으며 대표팀이 러시아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를 내고도 지소연은 박은선(29ㆍ로시얀카)과 함께 이코노미석에 몸을 싣고 출국해야 했다.

지소연은 비록 이날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스페인의 문전을 위협해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경기 최우수선수(POM)를 차지했다. 경기 후 그는 “1승1무1패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 정말 기쁘다. 오버하는 것 같지만 우승한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3년 여자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안종관(49) 감독은 이번 16강 진출에 대해“12년 전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 여자축구의 변방에 속했다”며 감격해했다. 안 전 감독은 “하지만 그 때의 쓰라린 경험도 약이었다. 당시 대표팀이었던 김정미와 박은선이 이번 대회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듬직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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