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자 기수 쥴리 크론. /사진출처=브리태니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경마 스포츠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은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많이 다뤄지곤 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경마만의 매력이 대중들에게 눈길을 끌 만한 요소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남다른 감동과 의미를 선사한다. 오늘도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역사를 써내려 간 그들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해 본다.
 
美 최초 트리플 크라운 시리즈 우승, ‘줄리 크론(Julie Krone)’
 
지금까지 약 3700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며 사상 최고의 여성 더러브레드 경마 기수로 손꼽히는 줄리 크론은 미시간 주에서 태어나 말 농장에서 자라며 어린 나이부터 말을 타기 시작했다. 14살이 되던 해, 18세 최연소로 미국 트리플 크라운 경주에서 우승을 거머쥔 ‘스티브 코덴(Steve Cauthen)’을 본 후 기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93년 그의 가장 큰 커리어 중 하나인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콜로니얼 어페어(Colonial Affair)’와 호흡을 맞춰 정상에 올랐다. 미국 트리플 크라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여성 기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런 공적을 바탕으로 2000년에는 여성 기수로는 최초로 미국 경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9년 심한 척추부상으로 결국 경마계에서 은퇴해 경마 해설자로 활동했으나 2003년 미국 최고의 경주 중 하나인 브리더스컵에 도전하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브리더스컵 쥬버나일 필리스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더러브레드 관련 사업과 강연, 클리닉, 과외 등 경마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신인 기수 페린 피터슨(Ferrin Peterson)의 에이전트로 활약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등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올해 그랜드 내셔날 우승 레이 첼 블랙모어. /그랜드 내셔날

 
◆ 영국을 들썩이게 한 최초의 여성 기수 우승
 
10일 잉글랜드 리버풀에 위치한 에인트리 경마장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경마 대회 중 하나인 ‘그랜드 내셔널(Grand Natinal)’ 대회에서 최초의 여성 우승자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레이첼 블랙모어(Rachael Blackmore).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기수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농부와 선생님의 자녀로 태어나 농장에서 조랑말을 타며 말과 인연을 만들어간 블랙모어는 2015년부터 프로 기수로 활약했다. 그는 2018~2019년 시즌 아일랜드 점프 경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기록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잉글랜드 최고의 경주 중 하나인 그랜드 내셔널에서의 정상 정복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75년 영국에서 제정된 성차별법이 발효되면서 비로소 여성들은 그랜드 내셔널 경주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7년 이래로 참가했던 여성들은 19명에 불과했다. 총 길이 약 7000m에 30개의 덤불 펜스를 넘는 장애물 경주인 그랜드 내셔널은 매년 40명이 참가하지만 덤불을 넘다가 넘어지는 참가자들이 많아 완주율이 극히 낮을 정도로 악명 높은 대회기도 하다. 
 
올해 그랜드 내셔널은 영국에서만 800만 명이 시청하는 ITV1 채널에서 라이브로 생중계가 됐다. 이번 대회 영국의 베팅 매출은 1억 파운드(한화 약 1550억)를 넘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독보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이러한 최고의 빅매치에서 당당히 우승을 따내며 기적을 만들어낸 그는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거 같다. 인간이란 느낌도 들지 않는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다.
 

2013년과천시장배 우승의 이신영 조교사. 한국마사회

◆ 한국 경마 살아있는 역사 ‘이신영 조교사’ 
 
한국 경마 최초의 여성 조교사. 언제나 그에게 붙는 수식어다. 올해로 벌써 11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이신영 조교사는 한국마사회 서울 경마공원에서 여전히 주목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1년을 기준으로 승률 15%를 넘나들며 톱3 안에 드는 성적을 기록했다. 복승률 또한 23%로 10위권 내에 안착했다. 뛰어난 성적을 유지하며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기량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기수부터 조교사까지 꾸준히 한국 경마와 함께 달려온 그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일까. 이신영 조교사는 “최초의 여성 조교사라는 부담감보다는 ‘제가 잘해야지 후배들이 또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책임감이 있다”며 “체력적인 부담은 있지만 도전 정신과 꾸준한 공부를 토대로 경마계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할 수 있는 여성 후배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마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코로나19로 경마 쪽이 너무 어려운 상태라 좋은 경주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이 죄송한 마음이다"며 "하루 빨리 정상적으로 경마가 속개될 날을 고대하며 준비에 최선을 다할테니 경마공원에서 만날 그 날을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힘주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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