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허인혜] “창욱씨”. 인터뷰 말미, 민감한 이슈를 물으려 데시벨을 낮췄다. 내내 당차던 지창욱의 목소리가 곧장 질문하는 볼륨에 맞춰졌다. “네”하고 소근거리는 앞에서, ‘이것은 일’이라고 수번은 되뇌어야 평정이 나왔다. 그럼에도 비집고 나오는 엄마 미소에 당황스러웠다. 최유진과 안나가 부러워졌다. 이토록 따뜻한 남자의, 그렇게 냉철한 비호라니.

-종영한 ‘더 K2’가 액션드라마로 불려 아쉽다고.

“1화만 봐도 액션 신으로 꽉 찼다. 다만 캐릭터 각각의 매력과 인물관계도가 상대적으로 덜 보인 게 아쉽다. 권력가인 한 남자에게 집착하고 야망도 큰 여자와 핍박 받는 소녀, 그 사이에 있는 늑대 같은 남자. 또 두 여자의 교집합인 장세준(조성하)이 그리는 관계도가 참 재미있다. 인물 관계도를 잘 짜놓고 입체적인 디테일이 살지 못했다.”

-목욕탕 신처럼 사랑 받은 액션 신이 많았다. 비하인드가 있나.

“과거에 홀딱 벗은 액션 신이 있었나? 없지 않았나(웃음). 처음에는 코믹한 연출도 생각했다. 장면을 찍고 나니 그림이 잘 나왔다. 밤샘 촬영을 하느라 수증기가 올라왔고 영화적 표현으로 이어졌다. 촬영 내내 액션에 맞는 몸을 유지했지만 노출이 가능한 몸매는 또 다른 문제였다. 식단관리와 운동을 병행해야 ‘더럽지 않은’ 몸이 나온다. 유지가 힘들어 초반에 촬영을 부탁했다. 가장 힘들었던 액션? 충남 예산에서 찍은 과수원 싸움 신이다. 너무 더웠다.”

-진짜 싸움은 잘하나.

“못한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액션을 잘하면 싸움을 잘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액션 연기와 진짜 싸움은 다르다. 액션은 장면을 찍기 전 합을 전부 맞추고 들어간다.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이고, 맞아도 충격이 덜해야 한다. 사실 싸움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특히 길거리 싸움은(웃음).”

-액션신에 삽입된 음악이나 연출도 인기를 끌었는데.

“우산 액션 장면에 독일어 성가 ‘아네모네’가 들어갔다. ‘힐러’ 때는 팝 음악이 OST로 깔렸다. 그런 음악을 넣어도 될까 싶었는데 막상 넣은 뒤 장면을 보니 색달랐다. 목욕탕신을 더 얘기하자면 맨 몸에 모자이크도 웃기게 입히고 음향도 코믹하게 깔자고 말했다. 다 찍고 그림을 보면서 다시 방향을 잡았다. 추위도 연출 요소가 됐다. 지붕 신들을 찍을 때 추운 날씨 때문에 안개가 잔뜩 끼어서 화면도 뽀얗게 나왔다.”

-‘힐러’ 대본이 디테일의 끝이라면 ‘더 K2’ 는 큰그림파라고.

“‘힐러’의 송지나 작가는 내가 연기한 서정후가 커피를 마시는 감정선까지 분할해 대본을 쓴다. 짧은 장면에 많은 디테일이 녹아 ‘어떻게 다 연출하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더 K2’의 장혁린 작가는 대본에 여백이 많다. ‘지붕, 키스한다’ 이런 방식이다. 이전의 상황도 신경 쓰지 않고 현 장면에 집중하라고 지시한다. 러브신에서 나오는 잔동작들은 대본에 없는 부분이다.”

-김제하의 본명은.

“끝까지 나도 모른다. 안나라면 김제하에게 본명을 물어볼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감독도, 현장의 배우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에필로그에 “나? 내 이름은”까지만 넣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개인적으로 김제하의 본명은 지창욱이라고 홀로 밀고 있다. 장혁린 작가에게 극 속의 시간을 살기 전 제하의 상황에 대해 많이 물어봤다. 여백이 많은 탓에 제하의 인생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이 어려웠다.”

-액션물과 멜로를 오간다. 감정선이 오락가락했을 텐데 어렵지 않았나.

“‘늑대’는 냉정하면서 감정이 풍부한 제하를 잘 드러내는 수식어다. 유진은 제하에게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안나는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다. 순간적인 상황에 집중하고, 인물과 관계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눈빛이 바뀐다. 친구를 보는 눈과 여자친구를 보는 눈이 다르듯 여러 가지 시선들이 나오지 않을까.”

-안나와 제하의 사랑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배우가 시청자를 명확하게 설득했어야 했다. 현장에서도 대본을 붙들고 어떤 지점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설득하지 못한 거다. 만약 다시 김제하와 안나의 사랑을 그린다면 지금보다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최유진과의 장면에서도 멜로를 느끼는 시청자가 있었다. 유진은 제하를 갖고 싶었고, 혹시 제하도 유진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긴장과 설렘이 케미를 유발한 것 같다.”

-바르셀로나 키스신이 화제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릴 때까지 키스신이 있는지 몰랐다. ‘갑자기 뭐야’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하려면 빨리 친해져야 했다. ‘윤아 씨, 빨리 친해집시다’라고 말하고 말도 그때 놨다. 며칠 만에 그 장면을 찍었다. 초반에 찍었지만 마지막회에 들어갈 장면이었다. 대사도 없었다. ‘안나와 제하가 여유롭게 즐기다가 키스한다’ 정도만 주어졌다. 걱정보다 감정도 배경도 잘 나왔다.”

-투윤아와의 케미는 어땠나? 송윤아인가, 임윤아인가.

“송윤아 선배는 (나를) 나이 어린 사람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대했다. 한 앵글, 한 무대에서 선입견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참 좋았다. 최유진과 제하의 신은 항상 긴장감이 서려있다. 비장한 마음으로 대화하거나 기싸움을 하는 틈 없는 신들이 많았다. 반면에 안나와는 풀어지는 장면이 많았다. 알콩달콩하고, 서로 장난을 치는 편안한 호흡이 이어졌다. 최유진과는 긴장감이 꽉 찬 연기 합이 나왔고, 안나와는 달콤하고 불편함이 없었다.”

-장세준과 최유진이 죽는다.

“‘같이 죽겠다’는 심정 아닌가. 순장 같은 느낌이 있다. 슬픈 캐릭터? 모두라고 생각한다. 제하와 안나, 유진, 세준 등 인물들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다. 다들 사연이 짙고 상황에 치여서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된 사람들이다. 제하와 안나는 마지막에 행복을 얻었다. 그렇게 보면 죽은 사람들이 가장 안됐다.”

-뮤지컬 ‘그날들’과 방송 일정이 겹쳤었다.

“‘그날들’ 팀과 ‘더 K2’ 팀이 서로 편의를 봐줬다. ‘그날들’ 참여 회차가 적은 게 아쉬웠다. 공연 탓에 본방사수를 못할 때도 있었다. 같이 뮤지컬을 공연한 선배 중에 서현철이라는 배우가 있다. 현철 선배가 “창욱아, 송윤아 씨하고는 친하게 지내라. 걔 완전 푼수야”라고 설명해줬다. 현장에 오니 말 그대로였다.”

-눈빛이 좋은 배우를 꿈꾼다고. ‘더 K2’에서도 눈빛이 강렬했다.

“배우건 사람이건 눈을 가장 먼저 본다. 그 사람의 눈빛이 어떤지. 눈빛이 좋아지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항상 고민인 부분인데, 사람이 눈이 깊어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를 고심했다. 사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연기를 할 때 진심의 감정을 유지하면 감정적인 순수함이 눈에 드러난다.”

-마지막 액션이라 했다. 차기작은.

“제작발표회 때 액션을 다시 안 하겠다고 했다. 캐릭터도 매력이 있고 대본도 재미있으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이 왔는데 안 한다는 답을 못하겠더라. 액션 로망도 있었다. 어린 시절에 ‘야인시대’ ‘견자단’ 보면서 꿈을 키웠다. (군 입대가 머지 않았다는 질문에) 그 사이에 차기작을 하지 않을까. 오종혁 형이 해병대를 가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서 전혀 생각이 없다. 평범한 일반 육군으로 가고 싶다.”

사진=이호형기자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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