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판도라’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 판도라처럼 예기치 못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4년 전 제작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국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게 슬프게 느껴진다.

‘판도라’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동남권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고향을 떠나 선원이 되고 싶어하는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김남길), 원자력 발전소가 ‘밥솥’이라고 굳게 믿는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와 남편을 잃고 석 여사와 함께 사는 며느리 정혜(문정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재혁은 아버지와 형을 앗아간 원전소를 죽도록 떠나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원전소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사실 원전소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소장 평섭(정진영)이 여러 번 발전소 점검을 대통령(김명민)에게 제안하지만 총리(이경영)로 인해 묵살되고 만다. 그러던 중 최대 규모의 강진이 대한민국을 찾아오고, 타격을 받은 원전이 폭발하면서 방사능마저 유출된다.

▲ 영화 <판도라> 리뷰

이 과정에서 ‘판도라’는 안전불감증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적한다. 재난 컨트롤 타워 기능을 하지 않는 정부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과 어떤 사고든 안일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을 꼬집는다. 특히 언론을 막기 급급하고, 국민들이 가만히 있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고위 관료들의 무능한 모습은 경주 지진, ‘국정농단’ 사건 등 어지러운 시국과 묘하게 닮아 있다.

결국 제 기능을 상실한 정부 대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건 ‘우리’였다. 재혁을 필두로 원전소 직원들이 직접 사지로 뛰어드는 모습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웅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가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재혁의 뒷모습은 마냥 쓸쓸하다. 특히 아들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울부짖는 석 여사의 모습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슬픈 장면이다.

연출 면에서는 최대한 코믹 요소를 절제하며, 사실적인 내용을 부각하려 애쓴 박정우 감독의 노력이 돋보인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을 감소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원전을 늘리고 있다는 것을 자막을 통해서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감독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국민 하나하나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절망 대신 희망을 찾자는 메시지를 재혁과 가족들을 통해 전달한다. 리얼 재난영화이지만, 따뜻한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어 보기에 불편함이 없다. 러닝타임 136분. 사진=NEW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