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박정우 감독이 영화 ‘판도라’를 꺼내놓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수위 때문에 굴지의 투자 배급사들은 초기에 투자를 꺼렸고, 남모를 외압도 있었다. 개봉(12월 7일)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판도라’는 박 감독에게 내 자식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지진과 원전폭발로 벌어진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나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4년 전 제작된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현실과 많이 닮아 있다. 무능력한 정부,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 시민들의 희생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영화를 본 지인들이 ‘어쩌려고 그래?’라고 묻기도 했죠. 소재부터 현실을 바탕으로 했으니까요. ‘판도라’를 처음 시작했을 때 세운 목표는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나 현실감을 부여하자’였어요. 그래야 후반부에 나오는 드라마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4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모티프로 한 ‘판도라.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은 지진 ‘안전지대’라 굳게 믿고 있었고,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올 가을 규모 5.8의 최대 규모의 지진이 경주 지역에서 발생하면서 재난 대비 대책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데 어떤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아서 안타까웠죠. 얼마든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진을 사고의 원인으로 가정했어요. 이렇게 빨리 현실화가 될 줄은 몰랐죠.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재가 파격적인데다 수위도 셌기 때문에 개봉이 쉽지는 않았다. 박 감독은 개봉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뒀다.

“애초부터 개봉을 쉽게 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개봉을 못할 각오로 촬영한 영화였고요. 그 당시 (박근혜 대통령) 정권 초기라 살벌한 분위기였죠. 올해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 개봉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얘기를 배급사 관계자들과 자주 했죠. 그 시점에 또 이런 시국이 터졌고… 이걸 참 어처구니 없다고 해야 할지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혹자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국을 이용해 흥행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시국을 빗대 이 영화를 계획적으로 만든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원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시대에 편승해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 봐 달갑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제가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와 지금까지 (시국이) 바뀐 게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박 감독은 ‘판도라’에 굉장한 공을 들였다. 원전 전문가들을 섭외해 일일이 자문을 구해 영화의 사실성을 더했다.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로 철저히 완벽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영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사람들은 자잘한 수치나 지명을 가지고 트집을 잡을 테니까요.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뿐이었죠. 마지막에 원전 전문가들에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자문도 구했어요.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고 모든 검증 과정을 거쳐 시작했죠.”

‘판도라’에는 정부의 정곡을 날카롭게 찌르는 대사가 줄을 잇는다. 지진 사고 후 원전의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나선 재혁이 “잘못은 지들이 하고 수습은 우리가 하란다”고 울부짖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오히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한 번도 국가가 나서서 국민을 보호해준 적이 없었죠. 선량한 시민들이 알아서 살아남든지 피해를 봤죠. 또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손 놓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죠.” 사진=이호형 기자 leemario@sporbiz.co.kr. '판도라' 스틸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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