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이병헌은 배우 인생 동안 단 한 번도 연기 지적을 받은 일이 없다. 그만큼 작품 속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똑똑한 배우다. 멜로, 드라마, 액션, 느와르, 사극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한 이병헌이 통쾌한 오락영화 ‘마스터’(21일 개봉)에서 희대의 악역 진현필 회장을 맡았다. 마냥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악역이 아닌 친근하면서도 악랄한 연기로 또 한 번 스크린을 집어삼켰다.

-영화를 어떻게 봤나.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봤다. 경쾌하고 속도감이 느껴졌다. 딱 ‘감시자들’ 조의석 감독의 영화 같았다. 촬영하면서도 찍을 게 참 많았다. 한국 편과 필리핀 편이 1, 2부로 나뉘는 느낌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네 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자는 말도 했다. 조 감독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영화다.”

-삭제된 신도 많았나.

“강동원이나 김우빈은 각각 삭제된 장면이 있을 것이다. 나는 편집된 신이 좀 적었다. 물론 삭제된 장면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꼭 넣어야 하는 신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쉽지 않다.”

-극중 연기한 진 회장은 현실의 조희팔을 떠오르게 한다.

“거론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조희팔이 떠오른다는 이유로 장소 섭외도 잘 안 됐다. 인물에 대해 감독이 사전조사를 참 많이 해놨더라. 내가 따로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캐릭터를 표현할 때 다큐멘터리처럼 깊이 있게 따라 하려고 하진 않았다. 결국에는 픽션이 주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인물 하나를 두고 깊숙이 파고들자는 생각은 없었다. 실제 조희팔 영상을 봐도 어마어마한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 회장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눈빛이나 말투에서 영화적으로 특별하게 만들고자 했다. 첫 연설 신에서 회원들을 압도하지 않나. 회원들의 마음도, 지갑도 열 수 있는 설득력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내가 봐도 지갑을 열 수 있을 만큼 악역이지만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 장면은 체육관에서 촬영된 신인데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쓸 수 없어 CG의 힘을 빌렸다. 체육관 한 구석은 텅 비어 있었다(웃음).”

-박장군 역을 맡은 김우빈과 호흡이 볼만했다.

“김우빈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신 안에서만큼은 정말 능청스럽게 잘 놀았다. 연기하는 걸 보면서 ‘이 친구가 대본을 많이 연구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세세한 아이디어까지 내놓는 것 같더라. 자신만의 언어로 그 신을 부드럽게 녹여내면서 연기한 걸 보고 나도 많이 놀랐다. 김우빈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김우빈 강동원 진경 등 다 처음 호흡한 배우들이다.

“오달수만 빼고 다 처음 맞춰 본 사람들이다. 김우빈과 강동원은 실생활이나 시상식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진경도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깔끔하고 강렬하게 연기하는 배우였다. 엣지가 느껴졌다.”

-진 회장의 영어 발음이 참 웃겼다.

“일부러 그렇게 연기한 건데 많이 웃겼다니 다행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주변에 하버드대를 졸업한 똑똑한 친구가 있는데 동남아에서 사업을 한다. 그 친구가 비즈니스 파트너와 대화를 하는데 훌륭한 발음은 어디 가고 ‘땅땅’거리는 영어를 하더라. 이유를 물어보니 현지에서 사업할 때 그렇게 영어를 쓰는 게 너무 편하다고 하더라. 친근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진현필이라도 이런 영어를 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식 영어를 하고 싶다고 감독에게 말했고, 현지 배우들에게 내 대사를 읊어달라고 부탁했다.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발음을 연구했다.”

 

-‘내부자들’ 모히또만큼 애드리브에 공을 들였나.

“‘마스터’에서는 애드리브를 조심했다. ‘내부자들’ 안상구는 나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덜 나쁜 인간 아닌가. ‘마스터’의 진 회장은 안상구와는 전혀 다른 악인이다. 이 인물에게는 친근감이 느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웃음을 주는 장면도 있지만 현실적이지 않으면 배제시킨 아이디어도 많았다. 진 회장의 악마 같은 모습을 살리고 싶었다. 왜 뉴스를 보면서 비트주스를 마시고 새빨간 이를 드러내지 않나. 원래는 비트주스가 아니었다. 진 회장의 악마성을 살리기 위해 감독에게 바꾸자고 제안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시사회 때 음악이 들어간 버전을 처음 봤다. 약간 할리우드 영화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하고 난 뒤의 엔딩 느낌이 났다. 소속사 손석우 대표는 그런 느낌이 나서 영화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약간 촌스러움이 묻어날 수 있지만 어차피 영화는 판타지 아닌가. 몇 년 동안 답답한 현실만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그나마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내부자들’과는 성향이 전혀 다른 오락영화로 봐야 한다.”

-최근 시국발언을 자주 했다. 수위 있는 발언을 하면서 걱정되진 않았나.

“원래 걱정을 잘 하는 성격이다(웃음). 원래 정치성향 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회색분자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청룡영화제나 언론시사회 때 했던 발언은 정치적인 입장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시기를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느낀 감정을 얘기했을 뿐이다. 정치적 소신이 있다, 정치색이 있다는 말이 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에단 호크가 자신의 연출작에 출연 제안을 보냈는데.

“제안이 온 건 사실인데 아직 관심이 있다 없다 얘기할 정도는 아니다. 에이전트와 상의 중이다. 할리우드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여전히 번역해서 읽는다. 그만큼 어렵다(웃음).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한 것 같다. 어렸을 때 TV로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일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보기 힘들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 파치노는 꼭 보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했다.”

-시국이 그대로 담긴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세상이 시끄러워 그런 영화가 많다고 생각한다. 비리와 관련된 범죄스릴러 영화가 많아지는 게 좋다고 할 수 없다. ‘내부자들’ 같은 영화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비리투성이 현실을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개인적으로 다양한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자배우로서 내가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이 많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남자’에 치우친 충무로 현실이 지겹기도 하다. 국한된 장르가 많이 아쉽다.”

양지원기자 jwon04@sporbiz.co.kr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