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법 없어 대책 없다"는 금융당국 수장, 미지근한 사후약방문만 권고
국내 4대 가상자산거래소가 일제히 홈페이지에 공지한 팝업창 형식의 투자위험 안내
국내 4대 가상자산거래소가 일제히 홈페이지에 공지한 팝업창 형식의 투자위험 안내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미화 400억달러, 약 51조원이 증발한 테라-루나 사태로 전 세계 각국에서 일제히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소비자보호 책무를 다할 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플랫폼 역할을 하는 가상자산거래소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에 대해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태는 짧은 가상자산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동안 증권시장과 달리,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가상자산 발행과 감독에 있어서 규제 당국이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일각에선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다.

글로벌 주요 가상자산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폴 그레월 최고법무책임자는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가상자산이 상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이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자산에 투자하기 전까지, 이를 거를 수 있는 장치는 단지 거래소 스스로 검토한 결과 뿐이다.

실제로 가상자산거래소가 미심쩍은 코인은 '걸러내고' 있다. 그레월은 3월 상장 신청한 코인 160개 중 24개 만이 신규 가상자산으로 등록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인베이스는 4월 기준 모두 164개의 가상자산이 상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년 7월 28개에서 종목 수가 훌쩍 늘었다.

이는 신 산업이란 방증으로 가상자산, 암호화폐, 크립토 등 아직 그 용어 정립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더불어 코인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은 가장 최신의, 인기 토큰에 접근하려는 '욕망'의 화신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이저 가상자산거래소들의 '결정'은 그 자체로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코인베이스 상장 만으로도 가치가 급등하는 것이다.

사실상 이번 테라-루나 사태에 결정타를 날린 출발점인 역외거래소 FTX, 비트파이넥스, 바이낸스 등은 더 많은 종목을 상장시키고 있다. 샘 뱅크만-프리드 FTX CEO는 수백 개의 상장가산자산 중 "50개 정도가 실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금까지 가상자산 시장은 투자자가 알아서 주의해야 하는 시장이었다. 한국의 금융당국도 별 반 도리가 없다. 지난 22일 금융당국은 루나 사태와 관련해 스테이블 코인 동향 점검과 함께 국내 거래소에서 유의점을 적극 알리도록 권고하고 나섰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보다 앞서 17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투자자 보호 대책과 투자 손실 규모 파악에 대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해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가상자산업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근거법이 없어 별도 조치가 어렵다"며 "투자가 자기 책임 영역이긴 하지만 투자자들이 각별히 유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는 홈페이지에 투자 위험과 관련한 주의 당부 메시지를 공지했다.

24일엔 국민의힘 정책위, 가상자산특별위, 금융당국,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는  '디지털 자산기본법 제정과 코인 마켓 투자자보호 대책 긴급점검' 당정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수 많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미지근한 사후약방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관련법 제정이 안 되어 사태 파악과 예방대책 강구가 곤란하다고 답한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은 경솔하기 그지 없다.

가상자산시장을 법으로 규제하는 문제에 대해선 여러 가지 논란이 이미 불거진 바 있다. 특히 테라-루나의 경우처럼 '탈중앙화금융'을 표방하고 있는 가상자산은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규제를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부터 불투명하다. 이번 사태에 책임논란이 일고 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만 해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소환 요구에 대해 즉각 소송으로 맞불을 놓았다.

장펑 자오 바이낸스 회장도 "규제 당국이 토큰 리스트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걸 보고 싶다"며 "지금까지 세계 최대 거래소들은 어떤 가상자산을 상장할 지 결정하기 위해 집단지성(crowd intelligence)에 의존해 왔다"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인 자체 필터링 장치를 구현할 계획을 밝힌 곳도 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지난 4월 향후 에어비앤비나 아마존의 제품 리뷰와 유사한 방식으로 가상자산을 투자자들이 평가하고 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방식이 가상자산의 투자 위험성으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거란 의미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의 '자율규제'가 제대로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국내 주요 거래소들이 보인 제 각각의 대처를 보면 더욱 그렇다. 거래의 제한이나 정지, 입출금 중단 등의 조치가 중구난방이다보니 오히려 투자자들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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