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희망퇴직' 제한 큰 공공부문 위주로 갈등 요인만 커져
/금융노조
/금융노조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한국 사회에선 임금피크제가 유독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일부 업권에선 조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5월 26일 대법원은 "임금피크제가 고령 근로자 차별에 해당해 무효이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조치의 도입 여부와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이다. 따라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추후 하급심 판결에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주요 이해관계자인 노사단체들은 일제히 입장을 밝히며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금융권 노동단체의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과 주요 금융공기업 노조들이 속해 있는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2금융권, 보험사, 증권사 노조를 거느리고 있는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는 일제히 성명을 내고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임금피크제 폐지와 산하 조직 실태조사 등을 통해 본격적인 소송전에 뛰어들 것을 예고했다.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개인의 근속연수·학렬·연령 등의 인적요소를 중심으로 임금이 책정되는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가 고착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제도다. 이는 일정 연한이 지난 이후 직원들의 임금을 줄이는 게 골자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라기 보다 장기근속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일자리창출을 위한 선순환에 활용한다는 것이 기본 취지다. 임금피크제는 이 같은 취지로 도입됐지만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예를즐어 은행권만 보더라도 임금피크제의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2022년 기준으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는 만 56세 이후다. 4대 시중은행의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은 4년~5년정도로 60%에서 40%까지 임금을 차등 삭감하고 있다.

하지만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4대 시중은행의 임직원 수는 약 5만 8000명이며 이 중 임금피크제 적용자는 725명으로 알려진다.
 
은행권에서 이처럼 임금피크제 적용 인원이 미미한 이유는 만 56세 이상인 직원을 그만틈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매년 희망퇴직 등의 제도를 통해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자연감소'해 왔다"고 밝혔다.

그에 비해 공공 금융기관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금융권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는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최초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지난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분석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따른 채용효과 자료를 살펴보면,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이를 통한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린다는 도입 취지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다.

도리어 현실에선 개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기관 정원에 묶여, 신입 채용에 걸림돌이 되는 판국이다. 제도 도입 초반에 큰 잡음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20년 가량 지난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2019년 산업은행 임금피크제 대상 인원들은 시니어 노조를 결성, 임금 소송에 들어간 바 있다. 또한 기업은행 재직자와 퇴직자들 400여 명이 임금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소송 중인 169명 외에도 1964년생 150여명, 1965년생 100명 이상 등 앞으로도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적용은 앞서 언급한 은행권에 비해 기간이 길고 삭감율이 가파르다는 게 특징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경우, 임금피크제 마지막 연차에는 10% 수준까지 임금이 깎인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임금피크제가 실효성은 없이 오히려 조직 내 분란만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아고 있다. 고용과 보상에 대한 이슈인 만큼, 노사 간의 대립 요소가 되는 것은 물론, 일부 조직에선 세대 간의 갈등까지 키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 금융기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적용 인원들은 관리자 이상 직급이어서 노조 조합원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임기 내 조합원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노조 입장에선 굳이 표가 나지 않는 임금피크제 사안에 집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대상자는 “당사자에겐 각자 당면한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다”며 “노조 집행부가 당장 조합원들에게 표를 받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해서 임금피크제 이슈를 도외시한다는 건 미래의 조직문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그에 반해 이들 ‘선배’를 바라보는 후배 직원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금융권 전반의 신입 인력 ‘스펙’이 상향평준화됐단 점을 감안하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공공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효과가 없는 임금피크제가 분란만 만들고 있음에도 좀처럼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공공기관 운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 논의에 앞서 인력구조 선순환을 위해 노사가 함께 요구하고 있는 ‘희망퇴직’ 제도 개선 역시 “수익구조와 근로조건 등 여건이 다른 공공기관에 일률적인 제도 시행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이는 제도 도입 시기엔 미처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박종훈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