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태광그룹, 1950년 섬유사업 시작
국내 최초 아크릴섬유ㆍ스판텍스 생상
석유화학 이어 금융ㆍ전자사업 진출
지난해부터 2000억 규모 투자활동 시동

[한스경제=김정우 기자] 서울 종로구 태광그룹(흥국생명) 사옥에는 '해머링맨(Hammering Man)'이 있다.  높이 22m의 이 거대한 조형물은 쉬지 않고 해머를 상하로 움직인다. 노동의 숭고함을 표현한 이 조형물은 이제 태광을 넘어 광화문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됐다. 올해는 해머링맨이 설치된지 20년이 되는 해다. 2011년 이호진 3대 회장 구속 이후 '잃어버린 10년'이란 정체기를 보낸 태광그룹이 해머링맨처럼 재도약 시동을 걸고 있다. 더 열심히 움직일 태광의 '해머링'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

[태광의 해머는 멈추지 않는다] ①잊혀진 산업 발전의 주역
[태광의 해머는 멈추지 않는다] ②리더십 바꾸고 석유화학 재도약 시동
[태광의 해머는 멈추지 않는다] ③흥국생명·화재, 체질 개선 잰걸음
[태광의 해머는 멈추지 않는다] ④교육·문화의 밑거름 되다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자. (사진=태광그룹)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자. (사진=태광그룹)

“산업을 일으켜 국가의 재화를 늘리면 그것이 곧 애국이다.”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자)

태광그룹은 창립 71주년이 되는 지난해 창업주인 일주(一洲) 이임용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한 기념행사는 내실경영을 몸소 실천한 창업주의 뜻을 받들어 간소한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임직원 대상으로 기념 영상을 상영하고 2016년 출간한 경영철학서인 ‘큰 일꾼 일주, 큰 빛 태광’의 온라인 저자 특강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이외에 일주 기념서적을 발간하고 일주학술문화재단이 매년 수학학교 운영을 지원하는 포항공과대학 수학연구소(PMI)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태광그룹은 1950년 10월 25일 설립해 섬유·석유화학(태광산업, 대한화섬), 금융(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인프라·레저(티시스), 미디어(티알엔, 티캐스트, 한국케이블텔레콤) 등 분야 계열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재계 서열 48위다. 창업주 사재로 설립한 일주학술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교육 등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하고 있으며 문화계에 대한 지원도 이어왔다.

이 회장은 1921년 5월 7일 경상북도 영일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10월 부인인 이선애 여사와 모직물을 생산하는 동양실업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섬유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1954년 7월 부산 문현동에서 태광산업사를 설립, 독자경영을 시작했다. 1961년 9월 이 회장은 태광산업사를 자본금 1억환의 주식회사로 출범시켜 지금의 태광그룹으로 키워냈다.

태광산업 울산공장 전경. (사진=태광그룹)
태광산업 울산공장 전경. (사진=태광그룹)

특히 태광산업은 국내 최초로 아크릴섬유와 스판덱스를 생산하고 거의 모든 화학섬유를 생산하는 종합섬유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이 회장이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인 1990년대에 석유화학 분야까지 영역을 확대, 섬유-석유화학 사업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특히 태광산업은 효성, 코오롱 등과 함께 1970년대 국내 섬유산업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이 회장은 기존 사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금융업과 전자사업에도 진출했다. 1973년 흥국생명을, 1978년 고려상호신용금고(현 고려저축은행)와 천일사를 각각 인수했다. 흥국생명은 1975년 보유계약고 1조원 수준에서 1977년 2조원을 돌파했고 고려상호신용금고는 1983년 자본금 규모 6억3900만원, 자기 자본 15억원대로 인수 3년 만에 부산에서 가장 건실한 신용금고가 됐다. 별표전축으로 유명했던 천일사는 인수된 이후 태광전자로 사명이 변경된 이후 당시 혁신적인 디자인의 태광 에로이카 등 오디오, 전화기, 무전기 브랜드를 선보였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아버지 이임용 창업주의 인수합병(M&A) 승부사 기질을 이었다. 2004년 취임한 뒤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해상보험), 피데스증권중개(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인수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지역케이블TV 20여개를 인수해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티브로드를 탄생시켰고 당시 국내 1위 사업자로 키워내며 미디어 사업 역량도 입증했다. 50위권에 머물던 그룹 재계 순위는 이 전 회장 취임 후 30위권까지 도약했다.

하지만 태광그룹은 2011년 이 전 회장이 재판에 넘겨져 구속된 이후부터 정체기를 맞아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산업 지각변동에 따라 SK브로드밴드에 매각한 티브로드를 제외하면 주력 사업을 꾸준히 영위해왔으나 리더십 부재로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한 투자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고 실적도 쪼그라들었다. 태광산업의 경우 2011년 4조원이 넘던 매출이 지난해 기준 약 2조6000억원으로 떨어졌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약 4400억원에서서 3553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잃어버린 10년 가운데서도 건실한 재무구조 덕분에 태광그룹의 주력 사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점도 눈길을 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태광산업의 현금성자산(단기금융자산 및 공정가치금융자산 포함)은 1조4542억원이며 총자산 대비 비중은 29.5%에 달한다. 단기차입금은 902억원이며 부채 비율은 24.0%에 불과해 사실상 무차입 경영에 가깝다. 빚을 내지 않는 보수적 경영 덕분에 정체기 가운데서도 사업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광화문 랜드마크가 된 해머링맨은 올해로 설치 20년을 맞았다. (사진=태광그룹)
광화문 랜드마크가 된 해머링맨은 올해로 설치 20년을 맞았다. (사진=태광그룹)

지난해는 태광그룹에게 창업주 탄생 100주년뿐 아니라 이호진 전 회장이 2019년 6월 선고받은 3년 형기를 채우고 만기 출소한 해이기도 하다. 2011년 처음 구속기소 된 지 10년 만이다. 취업제한 명령을 받은 이 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수는 없지만 오너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점에서 그룹의 경영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웠다.

실제 태광산업은 지난해부터 합작회사 설립과 공장 증설 등 약 2000억원 규모의 투자 활동에 시동을 걸었으며, 흥국생명·화재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직개편과 디지털 역량 강화 활동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영진 교체도 이뤄져 올해 태광산업은 조진환·정철현 신임 대표를, 흥국생명과 흥국화재는 각각 임형준 대표와 임규준 대표를 새로 맞았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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