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 2023년부터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해 현장 적용…안전·페기물 문제 어쩌나 
시민·환경단체 우려 표명…"현실적 안전관리 계획없이 K택소노미 포함은 시기상조"
원자력산업협회 포럼서도 지적…"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침없으면 화장실없는 아파트"
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 의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 의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유럽연합(EU) 의회가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가결했다. 지난 2020년 논의가 시작된 이후, 원전과 가스는 제외돼 있었으나, 2050년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수용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하고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윤석열정부의 K-택소노미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EU는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는 대신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어, 실효성 측면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의회는 6일(현지시간)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을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 2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안이 가결된 것이다. 택소노미는 EU각료이사회를 거쳐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천연가스와 원전에 대한 투자는 녹색(친환경)으로 분류되고, 공공자금 지원 대상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2020년 6월 발표된 EU 택소노미 계획 초안에는 천연가스와 원전이 포함되지 않았다. 메탄 방출과 방사능폐기물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다. 하지만 EU는 지난해 12월 택소노미 초안에 천연가스와 원전을 포함시켰다. 2050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 것이다. 

결국, 천연가스와 원전이 EU 택소노미에 포함됐지만, 앞서 지난달 15일(현지시간)에는 이 같은 결정을 뒤집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EU 의회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위원회는 이날 합동 회의를 열고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의원들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전과 천연가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지만, 두 에너지원이 택소노미 규정에 명시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의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서 윤석열정부의 K-택소노미 논의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EU 의회에서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이 채택된 직후에도 "원전이 친환경 녹색에너지로 분류되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믹스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제30회 국무회의에서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 이상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이 심의·의결됐다. 반면, 재생에너지 분야는 원전 비중 목표치와 달리 구체적 밑그림을 제시하지 않았다. 업계는 문재인정부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시했던 비중(30%)에서 10% 가량 낮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4월 28일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는 내용이 담긴 '환경분야 국정과제'를 공개한 바 있다. 늦어도 8월까지는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한다고 밝혔다. 2023년부터 원전을 포함한 K-택소노미를 현장에 적용해 녹색 투자 분야 자금을 유치하고 원전 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한 모습. /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한 모습. / 대통령실

다만,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들은 원전을 "방사성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명백한 오염원"으로 규정하고 "현실적인 원전 안전 관리 계획 없이 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EU가 원자력에너지를 택소노미로 분류하는 대신 제시한 조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EU는 신규 원전 건설이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고준위 발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고, 사고 확률을 낮춘 '사고저항성 핵연료' 상용화 등 세부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했다. 참고로 국내에는 아직 방사능폐기물 처리 시설 확충 등 원전 안전 관리에 대한 명확한 대책이 없다. 사고저항성 핵연료 또한, 최신 원자력 핵심 기술로 원전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지만, 실제 상용화 가능성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7일 EU가 택소노미에 가스와 원전을 포함시키기로 확정하자 "매우 유감스러운 결정"이라며 "원자력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과 핵 폐기물 매립장 확보라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상용화 성공 여부가 미지수, 핵폐기물 매립장 확보는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합의가 된다 해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이날 <한스경제>와 통화에서 "원자력은 2021년 국내 발전량의 27.4%를 차지했는데, 이는 전 세계 원자력 발전 비중 9.9%의 3배 수준"이라며 "이미 높은 원전 비중을 더 높이려고 한다면 EU 택소노미 기준에서 제시한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과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 확보 등 안전 기준을 먼저 강화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지난 6일 개최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정책 포럼'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황주호 원자력진흥위원은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가동을 계속하면 필연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 용량 부족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와 같은 상황"이라며 "임시저장이든 영구처분이든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문자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원전에서 임시저장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제9차 전력수급계획(2020~2035년)에 따른 원전 가동시 2031년부터 고리와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보다) 원전 가동률을 높이면 더 빨리 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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