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추억물 이상의 가치
프로농구 등 스포츠와 인생에도 울림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겨울이 되면 모래바람이 날리던 1990년대 학교 운동장. 농구 코트 주변은 지금의 ‘로또 명당’처럼 문전성시를 이뤘다. 누군가는 서태웅, 누군가는 강백호가 되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주전자 물을 부어 표시해 놓은 3점슛 라인 밖에서 멋들어지게 득점에 성공한 누군가는 정대만으로 빙의했다.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오후 늦게까지 농구로 하얗게 불태우던 그 시절. 그렇다. 기자는 ‘슬램덩크’ 세대다. 왕년에 슬램덩크를 보고 따라 하던 3040세대가 극장가로 몰렸다. 1992년부터 주간 소년 챔프에 연재되고 1998∼1999년 SBS에서 방영된 농구 애니메이션 ‘슬램덩크’가 새해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로 귀환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7일 기준 누적 관객수 239만 명을 모았다.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다. 기자도 4일 영화관을 찾아 관람을 했다. 10대 시절 본 ‘슬램덩크’와 불혹을 앞두고 본 ‘슬램덩크’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극중 캐릭터들의 농구 실력과 북산고의 승패가 궁금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모인 북산고란 팀이 최강 산왕공고를 맞아 어떻게 승리해나가는지 과정에 더 시선이 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단신 가드 송태섭의 스토리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 농구는 높이 싸움이다. 그러한 확률 게임에 ‘단신’은 적지 않은 핸디캡이다. 단신 선수들은 스피드와 시야, 점프력 등으로 핸디캡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 송태섭과 북산고는 정우성과 산왕공고에 비해 일종의 ‘언더독(Underdog)’으로 비친다. 사회생활에서 을의 위치를 경험한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자신을 ‘언더독’인 송태섭과 북산고라는 캐릭터에 투영해 응원한다.
슛이 약한 강백호의 믿기지 않는 점프슛으로 역전승에 성공한 북산고. 팀 내에서 신경전을 벌였지만, 외부의 위협에 힘을 합쳐 결국 승리를 만든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에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슬램덩크는 단순 추억물이 아니다. 스포츠와 인생에 녹아 있는 진짜 가치를 일깨운다. 핸디캡을 극복해 나가는 선수 송태섭과 강백호, 다소 독단적이었지만 결국 팀의 소중함을 알게 된 서태웅의 이야기 등은 스포츠와 인생에 대입해 봐도 묘한 접점을 가진다.
프로농구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기자는 극중 송태섭과 강백호를 보고 서울 SK 나이츠의 가드 김선형(35)과 포워드 최준용(28)이 문득 떠올랐다. 1988년생으로 슬램덩크 세대인 한국농구연맹(KBL) 최고 스타 김선형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 미쳤다. 가슴이 웅장해진다”라고 후기를 남겼다. 최준용은 ‘괴짜’ 강백호와 닮아 있는 구석이 많다.
슬램덩크 신드롬은 프로농구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잔잔한 추억과 여운을 선사한다. 서울 여의도동 더현대 서울에 차려진 팝업스토어엔 한정판 유니폼과 피규어를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가 몰려들면서 ‘오픈런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농구 애니메이션 붐으로 프로농구에 대한 관심도 다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명작은 늘 관심과 교훈을 동반한다. 극중 북산고 농구부의 안 감독은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나는 겁니다”라고 강조한다. 스포츠와 인생도 마찬가지다. 30여 년이 지나도 ‘슬램덩크’가 주는 울림은 여전히 크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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