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여교사’속 선생과 학생의 치정은 껍데기일 뿐이다. 철저히 ‘갑과 을’로 나뉜 계급사회, 성공하지 못한 여성의 무기력한 삶, 사랑이라고 믿지만 결국 욕망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거짓 관계가 고리로 얽혀 있다. 김태용 감독은 이런 ‘여교사’를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인 질투와 분노를 이용해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왜 하필 여교사와 남학생의 치정이었나.

“사람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포착하는 걸 좋아한다. 기존 한국의 치정극 중 ‘해피엔드’를 굉장히 좋아한다. 재미있고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여교사’는 어떻게 보면 로리타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치정극을 만들고자 했다.”

-효주(김하늘)의 삶은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구축한 캐릭터인가.

“친구들에게 직장 얘기를 많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상당한데 그걸 다 숨기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여성들의 포커페이스가 상당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대화를 하면서 계급 문제가 직장 내에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걸 또 한 번 절감했다.”

-비정규직 교사가 임신 때 해임된다는 대사가 있는데.

“아직도 그런 규칙이 있는 학교가 있었다. 시골이나 외진 곳의 학교는 비정규직 교사가 임신할 시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더라.”

-두 여교사를 넘나드는 재하(이원근)가 어떤 모습이길 바랐나.

“왜 치명적인 남성을 옴므파탈이라 부르지 않나. 우리가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옴므파탈은 남성스럽고 섹시한 이미지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순수한 듯하고 어리며 모성애를 자극하는 행동이 주가 된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원근과 24시간을 함께 있었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웃음). 따로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했다. 아무래도 애정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전작 ‘거인’에서 신인배우인 최우식도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여교사’의 재하는 달리 보면 영재의 20대 모습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로 원근이가 주목 받길 바랐다. 원근이가 그동안 드라마는 여러 편 했지만, 영화는 데뷔작이었다. 드라마와 영화의 시스템은 전혀 다르다. 그걸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이희준의 특별출연은 신의 한 수였다.

“(이)희준 선배가 분량 이상으로 연기를 잘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호흡 맞추고픈 배우였다. 이희준의 첫 상업 영화가 ‘부당거래’였다. 며칠 밖에 함께 못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 제작사인 외유내강에 부탁을 했고 캐스팅이 성사됐다. 극중 효주에게 돌아와 욕하는 장면은 대본에 없는 내용이다. 순전히 애드리브였다.”

-엔딩 때 효주의 표정이 너무 태연해 놀랐다.

“인간의 무서운 본성을 담았다.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고 밥을 챙겨먹는 모습을 넣았다. 파국에 다다랐을 때 인간의 감정이 더 무섭다고 느낀다. 모든 것을 다 놓은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청문회 나온 사람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 더 무섭던데(웃음).”

-김하늘은 데뷔 후 처음으로 ‘결핍의 아이콘’을 연기했다.

“(김)하늘 선배는 ‘멜로퀸’이라는 수식어가 있지 않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기존에 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드라마 ‘로망스’로 교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지 않았나. 따로 감정 연기에 대한 디렉션을 주지 않아도 연기를 잘 소화했다. 중요한 감정의 포인트가 어떤 것인지 짚어달라는 요구를 많이 했다. 굉장히 직관적인 사람이었다.”

-‘금수저’ 혜영(유인영)을 표현한 방식이 신선했다.

“의도하지 않은 모멸감을 주는 캐릭터다. 때리지는 않았지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친절을 베푸는데 어쩐지 기분이 굉장히 나쁘지 않나. 관객들이 혜영을 보면서 ‘주는 사람이 문제일까? 받는 사람이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하길 바랐다.”

-우려했던 것보다 노출 수위가 높지 않았다.

“촬영하면서 영화와 배우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배우의 연기가 더 빛을 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여교사’는 여자가 주체가 돼서 끌고 가는 영화니까. 2016년에 ‘아가씨’ ‘비밀은 없다’ 등 좋은 여성영화가 많지 않았나. 그만큼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갈증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결말이 충격적이다.

“효주의 극한 감정을 표출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충격적인 결말과 반전만큼은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관객에게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논쟁거리가 될 만한 작품이다. 화두가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교훈이나 감동을 주는 영화를 보면 관객들은 수동적으로 감동을 느낀다. ‘여교사’는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 할 말은 다 하는 효주를 보면서 직장 여성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한다.” 

사진=이호형 기자 leemario@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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