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유희관/사진=한국스포츠경제 DB

[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두산 투수 유희관(31)에게 매 시즌은 편견과의 싸움이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느린 공을 주무기로 2013년부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렸지만, 매번 "이제는 '느린 공'이 통하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그를 따라다닌다.

이번 겨울 그는 또 한 번 편견의 벽을 절감했다. 오는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비 엔트리에 대체 선수로 진입했지만, 28명의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2015년의 아픔이 반복됐다. 그 해 유희관은 시즌 18승을 거뒀지만 프리미어12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의 '느린 공'에 대한 의심의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유희관은 묵묵히 자신의 공을 던진다. 그리고 언젠가 '편견'을 뛰어 넘고, 태극마크를 달 그 날을 기다린다. 최근 잠실구장에서 만난 유희관은 "언젠가 당당하게 (대표팀에) 뽑히고 싶다"고 말했다.

 

-WBC 선발에 대한 기대를 했을 것 같다.

"당연히 기대했다. 언론에서도 뽑힐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뽑히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고 나가서 열심히 던져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안 되더라도 내가 부족한 것이고, 올 시즌 준비를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기대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 이런 식으로 뽑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가 아프고, 이탈해 (대체 선수로) 가게 되는 것이지 않나. 운동 선수라면 누구나 프라이드가 있다. 내가 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에서 4년 연속 10승을 했고, 어느 정도의 자존심도 있다. 언젠가 (국가대표를) 가게 된다면 처음부터 당당하게 뽑혀 가고 싶은 마음이다."

-스스로는 어떤 점이 부족해 엔트리에 못 들었다고 보나.

"공 스피드를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데 국제 대회에서 아직 보여준 게 없다 보니 반신반의하시는 것 같다. 느린 공으로 국제 대회에서 잘했다면 뽑혔을 것 같은데 그런 적이 없으니 의구심을 갖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국제 대회에) 나가 보지도 않았고, 뽑힌 적도 없었기 때문에 느린 공에 대한 편견에 대해 아쉬움도 있다.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매년 '느린 공'에 대한 의심과 싸운다. 어느 정도 편견을 깬 것 같나.

"예전에는 100% '내년에는 데이터가 쌓여 안 될 것이다' 였다. 하지만 매년 하면서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비판적인) 댓글이 없어지고, 용기나 희망을 주는 댓글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번에 WBC 관련 기사 댓글을 봐도 '유희관은 안 뽑나, 유희관이 나가도 잘 할 것 같다'는 게 많더라. 응원을 해주시는 글을 봤을 때는 많이 위로가 됐고,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꾸준한 성적을 낸다는 건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안 보여주면 '말 뿐인 선수'가 되겠지만 조금이나마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인정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 같은 사람은 잘 되면 인기가 두 배로 많아지지만, 못하면 두 배로 욕 먹는 스타일이라는 걸 안다.(웃음) 그래서 더 철저하게 준비도 하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언제까지고 야구를 잘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걸 의식하기보다 내가 나아갈 방향이나 당당한 모습,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에는 구단 최초로 2년 연속 한 시즌 선발 15승, 역대 구단 좌완 통산 최다승(55승) 타이 기록도 세웠다.

"돌이켜 보면 운이 따르고, 복이 따른 선수다. 첫 선발 등판(2013년 5월4일 잠실 LG전)도 니퍼트가 담이 걸려 대체로 나갔다. 니퍼트가 아프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않나. 코치님들이나 감독님들도 도움을 많이 주셨다. (중앙)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프로에 가서 선발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제는 10승을 하는 선수가 됐다. 감개무량하고, 구단에서 만든 우승 관련 전시물에도 뛰어난 선수들 사이에서 마운드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그라운드에서 솔선수범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김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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