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 Mr . 마켓 <98회> 글·김지훈

장수는 서핑보드에 배를 깔고 파도를 기다렸다. 파도는 지평선에서 다가오지 않고, 분노한 화산처럼 밑에서 솟는다. 서퍼들은 이것을 ‘노크’라고 불렀다.

‘고래처럼 큰 놈이다!’ 파도는 순식간에 5m 높이로 치솟았다. 장수는 서핑보드에서 몸을 일으켜, 균형을 잡고, 파도의 꼭대기에 올라선 후 몸을 낮췄다. 파도는 굶주린 짐승처럼 포효했지만, 장수는 물길의 능선을 타고 파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파도는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장수는 서핑보드와 함께 해변에 닿았다. 드라마틱한 파도타기였다. 야자수 그늘 밑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손뼉 치며 환호성 했다.

“아주 멋졌어!”

비키니가 어울리는 금발의 아가씨가 장수에게 달려왔다.

산하는, 언덕 위 지프 차량 안에서, 소형 디지털 쌍안경으로 장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금발 아가씨가 장수의 목을 감싸 안는다. 행복한 미소였다.

“저 녀석 여자 꾀는 솜씨는 알아줘야겠어. 놈의 사이클은 점점 짧아지는데 …. 저 여자 …. 일주일 이내에 당할 거야.”

산하는 쌍안경을 접으며, 좌석 밑에 있는 케이스를 열었다. 옆 좌석에 앉은 준은 무표정했다. 산하는 도박사가 카드를 섞듯이 케이스 안의 저격 라이플을 조립했다.

“영생자라도 해도, 심장이 뚫리면 어쩔 수 없겠지?”

그는 준에게 라이플을 넘겼다. 준은 조용히 자세를 잡고 장수를 겨눴다. 15배율 스코프에 장수의 얼굴과 가슴이 들어왔다. 방아쇠를 당기면, 장수의 미소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고, 악惡은 사라질 것이다.

“알아둬야 할 게 하나 있어. 이런 일에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어.”

산하가 말했다. 그는 준이 겪고 있는 압박감과 혼란을 잘 알았다. 예전에 그도 그랬다.

“당신의 시작은 어땠죠?”

준은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심호흡했다.

“이런 일의 시작은 다 더러워. 옳은 일을 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너는 지금 절대 알 수 없어. 시간이 지나야 하지. 빨리 끝내고 가자고. 배고프다.”

준은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차 안에 화약 냄새가 피어났다. 산하는 쌍안경으로 장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가 준에게 사격을 가르쳤다. 준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 방울 토마토도 맞춘다. 바람도 괜찮았고, 시야 확보도 훌륭하다. 표적의 움직임도 잔잔했다.

장수는 쓰려졌고, 곁에 있던 아가씨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준은 착실한 솜씨로 라이플을 분리해서, 케이스에 넣었다. 산하는 차를 후진해서, 코너를 돌아 언덕을 내려왔다.

준비된 헬기에는 무소음 장치, 안티 노이즈 사운드가 장착되어 있었지만, 메인 로터에서 전해지는 진동은 의자를 흔들었다.

산하는 선회비행으로 해변에 접근했다.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장수가 저격당한 장소였다. 장수가 비틀거리며, 여자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주차장 쪽으로 걸었다.

“왜 확실하게 끝내지 않았지?”

산하는 사이클릭을 비틀어, 해변을 벗어났다. 그의 판단이 맞다면, 준은 ‘실수’한 게 아니라,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넥타르를 건넸나요?”

준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바위처럼 무겁게 말했다.

“녀석이 침대 밑에 보관하고 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확실하게 끝장내야 해.”

“그렇게 될 거예요. 이제 시작이에요.”

장수는 왼손으로 왼쪽 귀를 감쌌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준이 쏜 총알은 장수의 왼쪽 귀를 뜯어냈다. 장수가 차에 타자, 운전대 위에 놓여 있는 스마트 폰이 진동했다. 짧은 문구가 떠올랐다. ‘피를 마시지 마라.’ 장수는 거칠게 호흡하며, 멀어져가는 헬기를 노려보았다. ‘오늘을 후회하게 해주겠어. 날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네놈의 피를 너의 해골에 담아 마시겠어!’ 장수의 창백한, 피로 얼룩진 얼굴은 지독한 증오로 일그러졌다.

한국스포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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