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근 인터뷰./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한스경제 양지원] 배우 이원근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영화 ‘여교사’ 속 소년 같은 순수함과 악한 본성을 동시에 지닌 재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얼굴이다.

‘여교사’는 이원근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그동안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일말의 순정’ ‘하이드 지킬, 나’ ‘발칙하게 고고’ 등 다수의 드라마를 찍었으나 영화는 ‘여교사’가 ‘처음’이다.

“의미가 너무 큰 작품이에요. 값어치를 매기는 게 솔직히 힘들어요. 감독님이 아무것도 아닌 저를 캐스팅 해주셨죠. 김하늘, 유인영 선배도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것만으로 영광이었어요.”

그동안 작품을 통해 주로 밝은 모습을 보여준 이원근은 ‘여교사’에서 기존의 이미지와 전혀 상반된 연기를 펼쳤다.

“여태까지 보여드린 제 모습은 다 밝았죠. ‘여교사’에서는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한 재하의 묘한 느낌과 영악함이 보여서 신선했어요. 극 중 김하늘 선배에게 ‘저한테 뭘 바라신 건 아니죠?’라고 웃으며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재하의 악함이 드러나는 장면이죠.”

이원근의 올해 나이는 27살로, 극 중 고등학생인 재하와 같은 나이대로 볼 수 없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온전히 재하로 살기 위해 또래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늘 김태용 감독과 함께하며 ‘여교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 목소리 톤도 재하와 달라요. 제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되니까 촬영할 때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죠. 감독님이 친구들도 만나지 말라고 하셨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요. 그동안 애써서 연습한 게 허탕이 될까봐. 친구들을 만나면 또 제 원래 모습이 나오고 편해지니까요. 촬영기간 동안에는 거의 감독님과 24시간을 함께 했어요.”

극 중 분한 재하는 무용수다. 실제로 무용 경험이 없는 이원근은 연습에 또 연습을 반복해야 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연습했음에도 이원근은 ‘고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다며 겸손해했다.

“무용을 처음 했는데, 온몸에 다 신경을 써야 하더라고요. 포즈 하나를 취하는데도 40~50시간씩 연습했어요. 무용에도 공식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걸 모르니까 외울 수밖에 없었고요. 무용 선생님과 하루에 10~12시간씩 연습했어요. 선생님이 저보다 더 열의를 갖고 가르쳐주니 감히 힘들다고 게으름을 필 수 없었죠.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이원근은 효주(김하늘)와 혜영(유인영) 사이를 오가는 치명적인 남자로 활약했다. 신인으로서 두 여배우와 함께 호흡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다행히 제가 첫 영화인 걸아시니까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주셨어요. 제가 원래 낯가림이 심해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데, 그렇게 다가와주시니 너무 감사했죠. 그 때부터 선배들이 편해졌어요. 기분이 어떤지, 컨디션이 어떤지가 보이더라고요. 그 뒤부터는 제가 먼저 농담도 잘 건넸던 것 같아요.”

아무리 친해졌다 한들, 수위 높은 베드신 촬영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특히 후배인 이원근에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베드신을 촬영할 때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선배와 후배를 떠나 어쨌든 남녀 간의 관계가 드러나는 장면이니까요. 촬영 각도나 이런 걸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고, 그 다음에 선배에게 알렸죠.”

진중한 성격인 이원근은 연애에 있어서도 또래답지 않게 신중했고, 조심스러웠다.

“사랑에 대해 진중한 편이에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도 사랑에 대해서는 늘 진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길게 만나든 짧게 만나든 인간이 서로 사람을 사랑하는 데 굳이 속이고 밀당하고..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연애는 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하고요.”

‘여교사’는 사람의 열등감과 질투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인간이 가장 치부를 느끼는 이 감정을 깊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열등감을 안 느껴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는 열등감을 안 느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남과 비교하게 되면 결국 자기가 무너지더라고요. ‘얘는 되고, 난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불행의 시작이에요. 그동안 오디션을 보면서 저보다 소질 있는 배우도 많이 봤죠. 그 사람이 잘 되는 건, 저보다 더 뛰어나고 좋은 모습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주의 깊게 관찰을 해서 저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죠.”

열등감마저 배움으로 승화하는 이원근은 자신을 향한 비판적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배움의 즐거움이 좋아요. 질타든 아쉽다는 평가든 간에 다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그걸 받아들여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적을 받으면서 부족한 점들이 보완이 되는 거니까요. 물론 안 좋은 말을 들을 당시에는 마음이 상할 수 있겠지만, 다 제 양분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원근의 2017년은 바쁘다. 배종옥과 호흡을 맞춘 영화 ‘환절기’부터 10대들의 폭력과 권력을 그린 ‘괴물들’, 중년의 로맨스를 그린 ‘그대 이름은 장미’까지 바쁜 행보를 이어간다.

“저는 참 재능이 없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유능한 배우 선배님을 따라가려면 한 100가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엄청 걸릴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무조건 대본을 다 외우는 편이에요. 그것밖에 방법이 없더라고요.”

여전히 취미로 꽃꽂이를 즐긴다는 이원근은 롤모델로 데인 드한을 꼽았다.

“데인 드한을 정말 좋아해요. 소년미와 퇴폐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배우 같아요. ‘라이프’에서는 알게 모르게 섹시한 매력을 풍겼는데, 그런 이미지를 닮고 싶어요. 데인 드한 같은 배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웃음)”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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