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소주가 소비자에게 길을 묻다”…90년 저도수시장 역류하는 고도수 소주 등장
▲ 17.5도~18도의 저도수 소주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 주류업체가 23도짜리 고도수 소주를 출시해 시장에 파문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합성

[한스경제 송남석] 새해 벽두부터 소주 값 인상 소식에 주당들이 뿔났다.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해온 대한민국 대표 술이 소주이기 때문이다. 사실 소주는 국민들에게 술,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하는 오랜 친구이자 멘토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 가난한자나 부자조차 가리지 않는 대중성으로 우리 생활 속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주머니를 털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라는 점에서 이번 소주 값 인상 소식은 영 마뜩잖다.

인생사 수많은 부침이 있듯, 소주 역시 그동안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우리 곁을 지켜왔다. 고려 말에 전래됐다는 소주의 첫 변화는 1919년 평양과 인천, 부산에 알코올식 소주공장이 건설되면서부터 대중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소주의 원료는 이때 처음 재래식 누룩에서 흑국소주로, 다시 1952년 값싼 당밀로 대체됐다. 당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5도에 달했다.

소주 제조에 엄청난 변혁의 바람이 분 것은 1965년이었다.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 증류식 순곡주가 자취를 감췄다. 대신 고구마와 당밀,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만든 주정 희석식 소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주재료의 변화는 소주가격 인하와 함께 알코올 도수를 25도로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이후 20년 이상 ‘소주=25도’라는 고정관념이 유효했다.

소주가 비로소 완전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저렴한 가격은 서민층의 식탁과 술집 메뉴로 흔하게 등장하며 오늘날 소주의 토대가 됐다. 전국에 산재하던 소주공장은 1977년 주류회사 통폐합을 계기로 정리된다. 각도에 한 개씩 총 열 개의 희석식 소주업체 만들어졌고 현재 주류 제조 및 유통의 근간이 됐다. 1995년에는 ‘웰빙’ 바람에 힘입어 소주의 단맛에도 변화가 생겼다. 소주에 첨가되는 감미료가 기존의 스테비오사이드에서 건강에 유익하다는 올리고당으로 대체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소주업계에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 것은 1998년이다. 하이트진로가 23도의 참이슬을 내놓으면서 저도수 경쟁에 불씨를 당겼다. 일각에서는 “소주업체들이 판매량 증가를 위해 의도적으로 여성을 끌어들이는 마케팅”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한반도 온난화의 증거로 저도수 시대가 열린 것이라는 이색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20도에 이어 17도, 12도의 순한 소주가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맥주보다도 약한, 3도짜리 탄산 소주까지 출시되면서 소비자들의 기호가 저도수 쪽에 있음을 입증했다. 특히, 2014년 출시돼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소주의 도수가 17.5도~18도라는 대목에서 그렇다. 무려 93년 만에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반토막 난 것이다.

이렇게 시대의 흐름으로 굳어가던 저도수 소주시장의 흐름에 파문을 던진 업체가 등장해 연초부터 눈길을 끈다. 광주·전남 지역에 기반을 둔 보해양조는 최근 알코올 도수 23도짜리 ‘보해골드’를 10년 만에 재출시 했다. 외형적으로는 재판매 요청이 쇄도하고 소주 본연의 맛을 찾는 애호가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웰빙 바람을 타고 100년 가까이 순해지던 소주가 소비자들에게 다시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성급한 이들은 경기침체로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이 고도수 소주를 원하고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앞으로 판매추이를 지켜보면 알 일이다. 소주 시장에 고도수 흐름이 일시적인 파문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열어갈 마중물이 될 것인지 벌써부터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송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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