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배우 유연석은 메디컬 드라마의 한을 푼 것 같았다. 2008년 의학드라마 ‘종합병원2’를 통해 성인배우로 데뷔했는데, 준비한 만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컸단다. ‘낭만닥터 김사부’(낭만닥터)를 통해 “유연석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어?”라는 극찬을 받았으니 말 다했다. 의사들에게 “지금이라도 의대에 갈 생각 없냐”는 얘기도 들었단다.

“의사 연기는 원 없이 했다. 촬영 중반부터는 내 손으로 수술 신을 찍었다. 한석규 선배 손 대역도 했다. 의사들이 ‘우리가 몇 년 동안 공부한 걸 몇 개월 만에 하면 어떡하냐’고 놀라던데? 수처(봉합)을 잘해서 누군가 다치면 꿰매줘야 할 것 같다. 마취를 못해 문제지만(웃음).”

유연석은 ‘낭만닥터’에서 천재 외과의사 강동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의학드라마를 여러 차례 해왔지만 의학용어는 외우기 쉽지 않았을 터. “대사가 암호처럼 느껴졌다”면서도 “수술 신 촬영이 오래 걸리는데 찍고 나면 뿌듯했다. 의사들이 공감하면서 봤다고 해 힘이 많이 됐다”고 털어놨다.

유연석이 연기한 강동주는 돈도, 빽도 없는 개천에서 용난 흙수저다. 금수저처럼 살고 싶어 의사를 선택했고, 수많은 유혹에 흔들렸다. 김사부(한석규)를 만나면서 진짜 의사로 거듭났다. 강동주가 여러 가지 사회 부패와 맞닥뜨리면서 외치는 호소는 이해가 됐을까. 유연석은 “동주가 항상 정의롭고 이성적으로 행동했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실수도 하고 옳지 못한 선택을 해 갈등하기도 했다. 청춘들이 다 이런 시간을 겪지 않나. 나 역시 이 드라마를 하면서 성장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나도 금수저가 아니다. 부모님이 연기 쪽에 연고가 전혀 없다. 계속 오디션을 보고 단역부터 해서 지금까지 올라왔다. 동주랑 똑같이 걸어왔다. 때론 동주처럼 성공하기 위해 욕심 부린 적도 있다. 그래서 동주를 더 많이 이해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극중 유연석은 어느 누구와 붙여놔도 어색하지 않았다. 대선배 한석규와 브로맨스는 물론 서현진과 멜로, 임원회와 코믹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유연석을 200% 활용한 강은경 작가 덕분 아닐까. ‘구가의 서’에 이어 강 작가와 호흡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언제 이렇게 연기했지?’ 찍고 나서 놀랬을 정도였다”는 유연석은 “작가가 써준 대본의 탄탄함 덕분이다. 배우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고마워했다.

유연석은 한 회 잠깐씩 나오는 멜로 신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굉장히 공을 들여 찍었다”며 서현진과 키스신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첫 회에서 키스신을 찍은 건 처음이다.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간 것 같다. 당황스럽지만 다음 회를 보게 만들지 않았냐”면서 “촬영한지 얼마 안 돼 현진이랑 어색했다. 와인 한 병 사가서 한 잔씩 마시고 찍었다.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 좋아했다. 이어 “난 동주처럼 과감하지 않지만 솔직한 편”이라며 “예전에 ‘좋아한다’고 말을 못해 후회 한 적이 있다. 얘기라도 한 번 해보자는 주의다. 그래도 보자마자 키스하는 성격은 안 된다”고 웃었다.

‘낭만닥터’는 의학드라마의 새로운 신화를 썼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팀워크, 대본, 연기 세 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유연석이 “이 팀이라면 귀신, 동물 어떤 역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혼란한 시국 속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대사와 내레이션도 한 몫 했다. “시국이 안 좋아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뒤숭숭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메시지를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했다. ‘사이다 같았다’는 댓글도 봤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적절한 처방전이 된 것 같다.”

유연석은 ‘낭만닥터’ 전까지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라마, 영화, 예능, 뮤지컬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지만 성적은 초라했다.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 신드롬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심지어 ‘응답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미지를 바꾸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난 원래 밀크남, 어깨깡패도 아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런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배우들의 작품이 잘 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한 것”이라며 “다른 ‘응답’ 멤버들에게 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연석에게 ‘응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린 터닝 포인트였다. ‘낭만닥터’ 역시 “나의 다른 부분을 보여줘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또 다른 터닝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유연석은 “흥행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작품을 절실하게 하니까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좋은 결과가 있어서 용기도 많이 얻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선배 한석규에게 가장 큰 공을 돌렸다. 영화 ‘상의원’ 이후 2년 만에 만났는데, ‘낭만닥터’를 찍으면서 자신에게도 “진짜 사부님이 돼 있더라”며 고마워했다. 한석규가 지난해 연말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때도 남다른 느낌이었다. 어깨를 툭툭 두들이면서 “잘하고 있어”라고 무심한 듯 건네는 말이 큰 힘이 됐다고 귀띔했다.

“동주가 김사부에게 ‘당신은 좋은 의사냐, 최고의 의사냐’고 묻는 신이 있다. 김사부는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라고 답했다. 처음에 좋은 배우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다음에는 최고의 배우가 되려고 욕심 부렸다. 이제는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차기작? 낭만적인 작품 하나 들어오지 않을까? 기다려야지(웃음).” 사진=킹콩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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