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눈길' 리뷰./ 사진=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스경제 양지원] “이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살아져.”

영화 ‘눈길’의 종분(김영옥)은 이렇게 말한다. 일제에 핍박 받던 모진 세월, 위안부에 끌려가 갖은 치욕과 폭력을 견딘 종분이 갈 곳 없는 불량소녀 장은수(조수향)를 향한 따뜻한 위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철창 안에 갇혀 지내며 일본군을 받은 종분의 한숨 섞인 이 말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눈길’은 위안부를 다룬 영화다. 일제 강점기 서로 다른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같은 비극을 살아야 했던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 두 소녀의 가슴 시린 우정을 그린다.

기존의 위안부 영화와 달리 ‘눈길’은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유지한다. 무려 350만 관객을 동원한 ‘귀향’도 성적, 폭력적인 묘사로 관객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눈길’은 박수 받을 만한 영화다.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표현과 묘사 방식을 아예 배제했다. 무분별한 폭력으로 상처 입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보듬은 이나정 감독의 배려다.

감독의 배려만큼 감성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소녀가 위안소에서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그 시절에도 자신보다 친구를 더 생각한 종분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불량소녀 장은수를 알뜰살뜰 챙긴다. 자신이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와 비슷한 또래다. 갈 곳 없는 소녀를 보살피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또 다른 친구이자 소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일지 모른다. 감독은 종분과 은수가 살아온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나아가 그 시절, 그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가 앞으로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알려준다.

여러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 이 영화는 종분과 영애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 역시 따뜻하면서도 한 편으로 차갑고, 서럽게 그려냈다. 칼바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 겨울 새하얀 눈밭은 이들의 실날같은 희망과 함께 시련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두 어린 배우들의 연기 역시 흠 잡을 데가 없다. 아무것도 남겨진 게 없는 고향에서 엄마와 동생을 애타게 부르는 김향기의 연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김새론 역시 부잣집 딸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영애의 삶을 먹먹한 연기로 표현했다.

자극적인 폭력적인 묘사의 부재에도 메시지 전달력은 충분한 영화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그 시절 그 소녀들의 연대기를 MSG없이 울림 있게 담았다. 3월 1일 개봉.

사진=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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