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이현아] 영화 ‘더 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탐하는 자와 끝도 없는 권력을 욕심 내는 자들의 이야기다. 상대를 밟고 찢고 죽여 차지한 권력의 맛은 어떤 것보다 짜릿할 듯. 마침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리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다,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한다는 등의 이슈도 나왔다. ‘더 킹’은 졸지에 극장가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며 누적관객 500만 명(영화진흥위원회 2월 13일 기준)을 돌파했다. 정우성은 이 영화에서 더 높은 권력을 탐하는 한강식을 맡아 ‘키맨’으로 활약했다.

‘더 킹’ 속 한강식은 피 한방울 묻히지 않는 가장 악랄한 권력자인데, 정우성이란 필터가 입혀지면서 오히려 젠틀한 가면을 쓴 사이코패스로 그려졌다. 정우성은 “(한강식은) 사심에 충실한 사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입을 뗀 뒤 “스스로에 대한 월등한 의식을 가진 이에요. 술 마실 때 봐요, 홀로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음미하고, 철저히 혼자 스테이크를 썰지요. 식사는 나눔의 의미인데 단절돼 있음을 보여주죠. 대의적 의미의 나눔을 실천하고 실행해야 하는 공직자가 사심의 울타리 안에서 우아를 떨고 있는 모습이죠”라고 조근조근 설명했다.

정우성의 말마따나 한강식은 한치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관객들과 마주했고, 오히려 그 모습이 속된 말로 재수없어 보이는데 일조했다. 무엇보다 영화가 20년의 시간이 흐르는데도 한강식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모습으로 존재했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정우성은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은 다 위장이에요. 우월하고 품위 있어 보여 그럴 듯 하죠. 한강식은 슈트발까지 과시했고요. 그런데요, 보이는 것에 속으면 안 된다는 거에요. 보여지는 것에 속을 때가 있는데 내면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무서울 수도 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더 킹’은 조인성이 맡은 박태수를 통해 1980년대 이후 사회를 얘기한다. 박태수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고교 꼴찌에서 서울대 법대에 입학,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된 인물이다. 권력의 가장 바깥에서 핵심으로의 진입을 통해 내부의 추한 면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한결 같은 권력의 ‘이너서클’ 한강식은 잘 나가는 검사 출신 외에 전사(前史)가 없다. 아내와 아이가 유학을 가 있는 것 말고는 강남 8학군이거나 부잣집 출신이거나 등 권력을 두르는 무엇도 설명이 없었다. 정우성은 “태수의 전사가 한강식일 수도 있죠. 어떤 선택을 하면서 저기까지 왔는지는 현실에서 보여지죠. 태수는 복수로 속죄를 하는데 한강식이 만약 초심의 가치관을 지키려했다면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 놓여진 환경에서 주어진 선택을 하니 비뚤어진 권력의 모습으로 현존한 거지요”라고 말했다.

극중 한강식의 목표는 검사장으로 추측됐다. 최종 권력의 목표치고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우성은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것은 조직원으로서 궁극적인 목표죠. 다만 검사장 이후에 새 리그가 기다리고 있는데 얘길 안 했을 뿐이에요. 비뚤어진 권력자가 조직 전체를 오염시키는 행위의 확장으로 보면 어떨까요? 그런 위험성의 표상이 한강식이에요”라고 피력했다.

정우성은 왜 ‘더 킹’을 선택했을까. 전작 ‘아수라’가 온전히 정우성의 영화라면 이 영화는 조인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한강식처럼 자신만 주목받고 싶은 야심은 없었을까? “24년 영화를 하면서 문제의식과 동떨어진 작품을 했었죠. 그런데 선배로서 어떤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할까, 후배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사회적인 영향력을 염두하고 작품을 고르지만 현장에서는 동등한 동료로 후배들을 대했다. 캐릭터를 구현하는 배우이지, 작품에서조차 선후배는 아니라는 얘기다. 정우성은 “‘더 킹’을 찍을 때 술자리를 많이 가졌는데 술이 좋은 게 아니라 팀워크를 위한 것이었어요. 촬영했던 기운, 감정 등과 사회 이슈를 얘기하면서 감정의 교류를 했죠”라고 했다.

후배를 대하는 정우성의 방식은 여배우는 물론 여성과 약자를 대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김하늘과 출연한 ‘나를 잊지 말아요’는 정우성이 여성 감독과 여성 영화의 확산을 위해 투자를 지원했고,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우성은 “동등한 인격체를 대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남성은 여성보다 멍청해요. 바보에요. 여성의 존엄을 무시하면 안돼요. 여성의 말을 들어야 해요”라고 했다. ‘만나는 이가 있냐’는 질문에는 “비밀”이라고 했다. 사진=NEW 제공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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