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대한민국 역사상 이정도 쓰레기들이 있었습니까?”

영화 ‘더 킹’ 속 안희연 검사(김소진)의 대사다. ‘더 킹’의 세 주인공인 부정부패 검사 박태수(조인성), 한강식(정우성) 양동철(배성우)를 빗대는 조롱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 한재림 감독은 세 사람을 통해 썩은 권력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희화화했다.

‘이렇게 저격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연출력이 눈에 띈다. 한 감독은 권력층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된 후 ‘더 킹’ 작업에 몰두했다.

“기득권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방식과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 느꼈죠. 힘 있는 사람들만 살기 편한 세상, 언제까지 이렇게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답답함을 느꼈어요. 이걸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 감독은 전두환, 노태우 정부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의 실제 모습을 과감하게 화면에 담았다. 30년 간의 정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실제 대통령과 사건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없었죠. 제 나름대로 용기를 낸 건 사실이에요. 그만큼 관객에게 사실적인 영화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현실적인 사건을 따라가는 전개가 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죠.”

사실 ‘더 킹’은 권력의 부정부패를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내부자들’과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묵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내부자들’과 달리 ‘더 킹’은 한 편의 ‘마당놀이’ 같은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특히 주인공 박태수의 일대기를 따라 근현대사를 담았다는 점 역시 확연한 차이다.

“‘더 킹’은 다큐멘터리식 영화인데, 정치를 잘 모르는 관객을 유입하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박태수라는 주인공에게 동화되길 바랐죠. 그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권력의 진면목을 보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박태수가 무너졌을 때의 허탈감도 똑같이 느끼길 바랐죠. 그걸 체험하고 공감하면서 이런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묻고 싶었습니다.”

스스로를 ‘역사’라 칭하는 한강식은 박태수에게 강자의 옆에 그냥 있으라고 외친다. “독립군들? 한 달 연금 60만원 없으면 밥 굶고 살아!”라고 큰소리치는 한강식의 말이 어쩐지 궤변처럼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렇게 이뤄졌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최순실 사태’는 20~30년 전부터 시작된 거고요. 친일파 역시 같은 문제죠.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은 채 기득권 세력이 계속 유지되면서 권력과 역사의 흐름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잘 살게 된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거고요. 그들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들에 대항하다 패배한 거고.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습니다.”권력의 현실과 부패를 신랄하게 조롱하는 ‘더 킹’ 하지만 그 주인공을 연기하는 조인성, 정우성의 비주얼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그들의 비주얼이 곧 권력의 상징이죠. 권력을 동경하게 만드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비주얼적인 상징성도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야 권력이 무너질 때 쾌감이 더 배가 될 것 같았죠. 박태수와 한강식의 외모가 중요할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사실 박태수의 감정적 변화에 제일 중점을 두고 만들었고요. 외형적인 ‘모습의 변화’보다는 감정적 흐름에 더 집중하길 바랐어요.”

손아귀에 권력을 쥐고 흔든 박태수, 한강식, 양동철의 최후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양동철은 여대생의 치마 속을 훔쳐보다 걸려 대대적인 망신을 당하고, 비리 검사로 낙인 찍힌 한강식 역시 애처롭게 코를 풀며 최후를 맞이한다.

“사실 양동철 같은 경우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배)성우 형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외치는데, 그 장면이 훨씬 더 좋았죠. 형의 애드리브가 참 뛰어났어요. 한강식도 마찬가지죠. 사실 ‘한강식이 저 장면에서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우성 선배는 우는 것보다 코를 푸는 게 좀 더 비루해 보일 것 같다고 했어요. 그 장면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바닥까지 추락한 박태수는 다시 재기한다. ‘정치 1번지’인 종로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에 이른다. 박태수의 삶이 해피엔딩이었을지, 새드엔딩이었을지는 나오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관객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권력의 민낯과 함께 권력자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를 두려워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죠. 우리가 좀 더 주인의식을 가지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싶었어요.”

사진=NEW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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