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축 처진 어깨,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표정에 쓸쓸한 눈빛까지. 이토록 무기력한 남자가 또 있을까 싶다.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병헌의 모습이다. 그런데 볼수록 얄밉다, 완벽한 연기가.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서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은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을 맡아 열연의 정의를 내렸다. 영화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한 가장이 부실 채권사건 이후 가족을 찾아 호주로 사라지면서 충격적인 비밀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이병헌의 연기다.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표정과 행동, 눈빛으로 강재훈을 표현했다. 영화 속 강재훈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언제 느꼈을지도 까마득할 정도로 우울한 캐릭터다. 감정선이 두드러지지 않으며, 화를 내거나 웃는 모습도 찾기 힘들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영화의 분위기만큼 주인공의 오버하지 않는 연기가 중요하다. 이병헌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 맞는 연기를 보여준다. 캐릭터의 감정을 깊숙이 파고들며 표현한다. 영화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이병헌의 눈물 연기가 더욱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이병헌은 실제로 강재훈과 같은 경험이 없음에도 연기가 완벽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얄밉게 느껴질 정도다. ‘톱배우’로 불리는 이병헌이 그린 ‘모든 것을 잃은 남자’를 표현하다니. 이에 대해 이병헌은 “강지훈은 인생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인물이다. 사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나. 일상적으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감정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적으로 변화를 꾀했다는 점 역시 놀랍다. ‘싱글라이더’는 이병헌의 최근 필모그래피에서 전혀 다른 성향의 작품이다. ‘마스터’ ‘매그니피센트 7’ ‘내부자들’ ‘협녀, 칼의 기억’까지. 주로 액션 또는 범죄드라마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감성 장르 ‘싱글라이더’로 관객 앞에 선 이병헌의 선택은 가히 영리하다. 액션과 범죄물에만 쏠린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를 통해 17년 전 ‘번지점프를 하다’이후 감성 연기의 대가다운 진면목을 보여줬다. ‘인생 연기’를 펼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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