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종영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전지현과 이민호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한 배우가 있다. 바로 이지훈이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슬픈 악역’ 허치현을 맡아 맹활약하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허치현은 허준재(이민호)를 향한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르지 말아야 할 악행까지 저지르며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자칫하면 공감을 얻지 못할 악역이지만, 이지훈을 만나 입체적으로 변모했다. 선하고 훈훈한 외모의 이지훈이 표현하는 악랄함은 반전 매력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악역이 아니라 굉장히 슬픈 상황에 처한 친구라고 들었죠. 진혁 감독님이 제 ‘마녀보감’ 연기를 보고 추천했다고 하셨어요. 작가님도 마침 제 연기를 보고 계셨다고 했고요. 오고 가는 정 속에 캐스팅 됐어요.”

이지훈은 아버지에 애증을 품고 있는 허치현을 이해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 여동생을 더 예뻐하는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허치현의 감정은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렇게 극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흡사하게 겪어보긴 했어요. 예전에는 일기를 꼬박꼬박 썼는데 어린 시절 느낀 감정들도 적혀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많이 생각했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한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극중 허치현과 허준재는 언제나 날 선 대립각을 펼쳤다. 웃고 있다가도 서로 마주치면 바로 표정이 굳어버릴 정도다. 실제 촬영장은 어땠을까.

“캐릭터와는 정반대였어요. (이)민호 형에게 장난도 많이 쳤죠. 물론 예민한 감정신이 있을 때는 장난을 못 치긴 했죠. 심청(전지현)과 삼각관계가 그려질 때도 저랑 형이랑 하도 웃어서 NG가 많이 났어요. 민호 형은 정말 털털하고 쿨한 성격이에요.”

허치현의 마지막은 안쓰러웠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후 스스로 자살을 택하며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황신혜)에게 “저주스럽다”고 말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신이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본 많은 분들이 제게 칭찬을 많이 해 주셨죠.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어요. 전 사실 허치현의 자살을 원했거든요. 자살을 하면서 엄마랑 뭐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작가님께서 그런 대사를 넣어주셨죠. 허치현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지훈은 이 장면을 위해 일부러 잠을 줄였다고 했다. 최악의 컨디션에서 연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몸을 더 부르르 떨고 싶었어요. 일부러 컨디션을 안 좋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대사와 상황에 충실해서 연기하자는 생각으로 임했죠. 강서희가 제 목덜미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너무 짜릿했어요. 연기가 끝나고 (황)신혜 누나께서 저를 칭찬해 주셨어요. ‘배우가 될 수 있는 눈’이라고 하시면서요. 누나가 그런 말을 한 게 (지)창욱 씨 이후로 제가 처음이라고 하셨죠.”

배우에게 악역은 쉽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다. 감정 소모가 많을뿐더러, 쉽게 웃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훈은 자신보다 전지현과 이민호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저보다 분량이 더 많은 (전)지현 누나와 민호 형이 더 지쳤을 거예요. 허치현 같은 경우는 후반부에 감정신이 많다 보니 연기할 때만큼은 힘들었죠. 그런데 힘든 게 오히려 연기할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오히려 착한 역할보다는 ‘이게 좋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지훈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과거 ‘학교 2013’에서 호흡을 맞춘 신혜선과 재회했다. 워낙 막역한 사이로, 다정하게 찍은 셀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혜선이에게 저는 늘 진지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학교 2013’을 같이한 다음에 이렇게 큰 작품에서 만나니까 더 뭉클했어요. 혜선이에게 제가 ‘이 길로 오래오래 가서 좋은 연기하는 사람으로 남자’고 말하니까 뭐가 그렇게 진지하냐며 타박을 주더라고요 (웃음). 혜선이는 정말 착한 동생이에요. 5년 전에 처음 만났는데, 그 때 둘 다 돈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던 게 생각나요.”

그 동안 작품을 통해 상대 배우와 완벽한 러브라인을 형성한 적 없는 이지훈이다. 전지현과 함께 호흡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허치현과 심청이 신세계 백화점 뒤 크리스마스트리 앞을 걷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여배우와 예쁜 눈빛을 주고받으며 걸었는데 그 신이 기억에 남아요. 참 좋았어요. 지현 누나와 함께 걷는 것 자체만으로 영광이었죠.”

이지훈은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시그널’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작가 특유의 스릴러를 선호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기회가 생긴다면 김은희 작가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제가 정말 팬이라서요(웃음). 한 번쯤은 스릴러 장르에 출연하고 싶기도 하고요.”

1988년생인 이지훈은 한국나이로 서른 살이 됐다. 서른 살을 넘기기 전에 배낭여행을 하는 게 꿈이라며 환히 웃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알아보고 있어요. 올해에는 드라마 두 편, 영화 한 편 정도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죠. 서른 살에 배낭여행을 꼭 한 번 가고 싶어요. 한 달 정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네요.”

사진=이호형 기자 leemario@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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