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만큼 극적인 요소가 많은 걸그룹도 드물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은 2001년 선예를 영입하고, 6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7년 원더걸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선예를 중심으로 현아, 소희, 선미를 차례로 발탁했고 예은이 막판에 합류하며 5인조를 완성했다.

야심차게 데뷔했지만 4개월 만에 시련을 겪었다. 소희는 오토바이 사고로 한 달 간 무대에 서지 못했고, 현아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그 해 9월 유빈이 새로운 멤버로 영입되면서 비상을 시작했다.

‘텔 미’로 소위 말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원더걸스의 성공을 보고 기획사들이 잇따라 걸그룹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소 핫’ ‘노바디’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원더걸스는 ‘국민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때 다섯 소녀들은 돌연 최고 자리를 내려놨다. 맨몸으로 미국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 76위로 진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낯선 타지에서 힘겨운 생활이 이어졌다. 2010년 선미가 탈퇴하게 되면서 팀은 더욱 슬럼프에 빠졌다.

혜림이 새롭게 투입돼 ‘투 디퍼런트 티어즈(2 Different Tears)’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 ‘라이크 디스(Like This)’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펼쳤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그 사이 선예는 결혼을 깜짝 발표했고, 식을 올린 뒤에는 캐나다로 떠났다. 소희는 연기자의 길을 결심하고 회사를 옮겼다.

원더걸스는 이대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애써 ‘해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어도 다시 예전처럼 활동하는 게 가능하리라 본 사람들은 드물었다. 2012년 7월 세계적인 힙합 뮤지션 에이콘과 작업한 '라이크 머니(Like money)'는 그들의 마지막 싱글로 여겨졌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3년 뒤 보기 좋게 일어섰다. 선예와 소희를 대신해 선미가 다시 합류했고 악기 하나씩을 맡아 밴드로 다시 태어났다. 유빈이 드럼을 치고 예은이 키보드, 선미가 베이스, 혜림이 기타를 각각 어깨에 둘러맸다. 새 앨범명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리부트(REBOOT)’다. 연주만 익힌 것이 아니라 한 곡을 제외하고 모든 수록곡을 멤버들의 손을 거쳐 완성했다.

원점에서 시작하는 만큼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선미는 “항상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실력이 좋아지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멈췄다. 연습실을 박차고 나가 울었던 적이 모두 한 번씩 있다”고 묘사했다.

길어진 공백기, 그 사이에 떠돌던 해체 소문도 분명 부담으로 작용할 법했다. 그럴 때일수록 원더걸스는 똘똘 뭉쳐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유빈은 “항상 우리 넷이 항상 연락을 하고 살아서 체감하지 못했다.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드럼이 정말 재밌어서 지하 연습실에서 드러만 치고 살았던 것 같다”고 흔들림 없었던 팀워크를 자랑했다.

시대를 호령했던 걸그룹이 밴드로 탈바꿈한 것은 분명 신선한 변화다. 밴드의 생명력을 우려하는 것에 앞서 도전 자체가 큰 의미를 지녔다. 예은의 말을 들어보면 원더걸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이기도 했다.

“미국 생활에 후회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잘 안 믿으려고 한다. 정말 우리는 그 때 경험을 통해 두려움, 공포 같은 게 사라졌다. 그 힘으로 밴드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것저것 하면서 사는 게 어떠한가.(웃음) 앞으로 보여줄 우리의 모습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심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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