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그룹의 헤드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 해체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청문회에서 미전실 해체를 약속한 이재용 부회장(좌측 상단)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전경.ⓒ연합뉴스 자료사진 합성

[한스경제 송남석] 3월 첫날부터 ‘각자도생(各自圖生)’과 ‘무한경쟁(無限競爭)’이란 사자성어가 경제계 최대 화두로 급부상했다. 어제부터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를 선언한 삼성의 결정은 경제계 전반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예상은 했지만 삼성이 이렇게 빨리 ‘격랑’을 맞게 될 줄 몰랐다는 반응들이다. 당장 그룹의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은 2월 28일을 마지막으로 삼성에서 자취를 감췄다. 미전실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2월 마지막 날’을 보낸 셈이다.

1959년 이병철 선대회장 비서실에서 출발한 미전실은 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계열사 감사, 사장단 인사, M&A 등을 총괄해온 삼성그룹의 사실상 ‘두뇌’ 역할을 해왔다. 미전실은 한때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선호 경영 스타일에 비춰 기능조정설도 제기됐지만, 그룹내 위상과 역할을 놓고 볼 때 한순간 해체로 귀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이런 미전실도 결국 최순실 게이트라는 광풍을 넘어서지 못했다. 작년 12월 청문회 과정에서 해체가 공론화됐고, 채 3개월이 지나기 전에 삼성그룹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는 그룹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50명에 육박하던 미전실 임직원들도 59개 계열사별로 단행하는 인사를 통해 원대복귀하거나 대기발령 됐다.

경제계에서는 58년 전통의 거대한 삼성그룹 책임경영도 동시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당장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이 사라지고, 통합 이미지 구축 작업 등이 ‘올 스톱’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장 기업인 하면 인수 같은 초대형 M&A는 꿈꾸기 조차 어렵다. 당연히 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약화와 예기치 못한 업무 공백 및 중복 등도 풀기 힘든 난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예전만큼 계열사 간 시너지를 끌어내기가 어려운 구조다. ‘관리의 삼성’에 ‘관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확실한 지향점이나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59개 삼성 계열사들은 철저한 책임경영을 통한 각자도생과 무한생존경쟁에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대로 두면 삼성은 독자생존을 기치로 내건 채 단기 실적에 치중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중장기 투자 위축을 부르고, 미래 먹거리 발굴이나 계열사 간 조정·협력이라는 순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경유착이란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결기에서 출발한 것이 이번 미전실 해체 결단 아닌가. 삼성은 이번 결단을 정권과 엮인 부패의 사슬을 확실하게 끊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미전실 해체가 가져올 다양한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 제시도 서둘러야 한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최소화와 한국의 기업문화를 한 차원 더 발전시켜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삼성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삼성의 미전실 해체는 결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벌써부터 재계는 물론 국내외 주요 기업들까지 삼성의 행보와 향후 득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삼성의 일거수일투족 자체가 비상한 관심거리다. 삼성은 국내 대표기업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한국 기업문화를 선두에서 끌어가는 맏형이란 두 가지 책무를 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송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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