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표현을 해야 하는 영화였죠. 사람들이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늦기 전에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위안부 소재를 다룬 영화 ‘눈길’(1일 개봉)에 출연한 김새론의 말이다. 열여덟 살의 소녀는 또래답지 않게 성숙했고, 허투루 말하는 법이 없었다. 김새론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인터뷰뿐 아니라 ‘눈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영화는 1940년대 일본강제기 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다. 김새론은 극중 부잣집 딸이지만 부친의 독립운동 전력으로 위안소에 끌려가는 영애 역을 호소력 짙은 감정 연기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눈길’은 김새론이 직접 선택한 작품이라 의미가 크다. ‘눈길’은 1940년대 일본강제기 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김새론은 또래의 김향기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연기했다. 김새론은 이 작품으로 금계백화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모든 작품은 부모님과 회사와 상의해서 제가 결정하는 편이지만 ‘눈길’은 특히 그랬어요. 회사도 그렇고 부모님도 선뜻 ‘이 작품 해라’라는 말을 못했죠. 아무래도 주변에 이끌려서 하면 힘들 수 있는 연기니까요. ‘네 마음 가는 대로 해라’라고 얘기해 줬어요.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죠. ‘해야 한다’로요.”

김새론은 영화 촬영 전 조금이라도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위안부의 실체에 대해 공부했다. 도움을 준 역사 선생님까지 호명하며 미소짓는 김새론은 영락없는 소녀였다. “위안부 소재의 단편이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고요. 피해자 영상을 찾아봤어요. 또 중학교 역사 선생님께 많이 여쭈어보기도 했고요. 사실 이게 직접 지문을 들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으니까요.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선생님 성함 좀 꼭 넣어주세요. 최지혜 선생님입니다.”

촬영에 돌입한 후부터는 함께 호흡을 맞춘 김향기(종분)와 서로 의지했다. 다른 위안부 소재 영화와는 달리 직접적인 성적, 폭력적인 묘사가 없지만 그럼에도 간접적으로나마 위안부 피해자들의 심경을 느꼈다.

“촬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되게 무거웠어요. 아무래도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아픔과 슬픔이 있으니까요. (김)향기와 서로 많이 의지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영애가 종분에게 사진을 건네는 신인데, 그게 바로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 같아요.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잊지 말아달라는.”

가혹한 묘사나 장면은 없지만, 영애가 위안소 방 한 칸에 갇힌 채 피임기구를 씻는 장면이나 일본 교사에게 뺨을 맞는 신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김새론이 아닌 극중 영애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울림은 더욱 컸다.

“인간 김새론이 아닌 영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려고 한 것 같아요. 영애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처하잖아요. 그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연기했죠. 맞는 장면이 많았는데 큰 부상은 없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사실 어떤 역을 해도 안 힘들 수는 없잖아요. 힘들다고 해서 ‘아~ 이 연기는 다신 안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아요.”

여덟 살의 나이에 영화 ‘여행자’(2009)로 데뷔한 김새론이다. 이후 ‘아저씨’(2010) ‘이웃사람’(2012) ‘도희야’(2014) 등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에서 주로 어두운 캐릭터를 소화했다.

“워낙 실제 성격이 밝아서 그런 연기를 하고 나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일상으로 돌아가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저절로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더라고요.”

대중은 여전히 ‘아저씨’ 속 원빈의 꼬마 김새론을 기억한다. 그만큼 영화에서 김새론이 돋보였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아저씨 꼬마’로 이미지가 각인되기도 했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는데 아직도 ‘아저씨’ 속 제 모습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죠. 굳이 ‘아저씨’ 이미지를 탈피해야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웃음). 또 많은 분들이 ‘그 꼬마가 벌써 이렇게 컸어?’라고 생각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잘 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쁘기도 해요. 요즘도 이정범 감독님과는 연락하고 지내요. 원빈 오빠의 근황도 간간히 듣고 있고요.”

김새론은 같은 아역배우인 김유정, 김소현과 절친한 사이다. 연기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 세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

“제가 성향이 달라서 누군가에게 막 얘기를 하는 편은 아니에요. 한 번은 유정 언니가 ‘힘든 감정이 누구나 있을 거야’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와 닿았어요. 굳이 말을 안 해도 언니를 아니까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서로 공감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죠.”

2년 뒤 스무 살이 되는 김새론은 아역과 성인배우의 경계에 서 있다. ‘아역’을 벗어난다는 건 배우로서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새론은 “굳이 나이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며 웃었다.

“고민이 많은 건 사실이죠. 작품을 선정할 때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고요. 그래도 아직은 열여덟 살이니까 성인인 척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최대한 대중이 보기에 괴리감이 없어야 하니까요. 지금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분명히 있을 거고요. 물론 성인이 돼서도 교복을 입을 수 있겠지만 지금 하는 것과는 다를 것 같아요.”

사진=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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