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 Mr . 마켓 <113회> 글·김지훈

“자살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죠. 그런 죽음을 ‘위대한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킷은 소수점 자리 계산을 끝낸, 회계사처럼 잘라 말했다.

“무엄하군. 감히 내 앞에서 교리를 논하다니! 내가 누군지 모르는가?”

교황은 눈을 부릅떴다. 장님 특유의 혼탁한 하얀 눈동자가 마킷을 향했다. 마킷은 젊은 시절 시체 안치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 시절 그가 수습했던 시체들의 눈동자와 교황의 눈빛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선택은 당신의 것입니다. 피의 갈증 속에서 살다가 한순간 실수로 악마로 낙인찍히든지 …. 위대한 죽음을 통해 위대한 성자가 될 것인지.”

마킷은 김빠진 맥주처럼 밋밋하게 말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신에게 조금은 짜증이 났다. 험상궂던 교황에게서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휠체어를 움직여, 마킷에게 다가갔다.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킷의 목소리와 숨소리, 냄새로 위치를 짐작했다.

“내가 영생을 이식받을 때, 몸에서 불이 났지. 영생 이식 중에 발생하는, 신체 발화 현상이라던데 …. 그 때문에 두 다리를 잃고, 눈까지 잃었지. 하지만 ….”

교황은 손을 뻗어 마킷의 손목을 붙잡아 당겼다. 마킷은 휘청거렸다. 교황은 밧줄 잡아당기듯이 마킷의 팔목에서 팔꿈치, 어깨, 그리고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엄청난 아귀힘이 마킷의 숨통을 조였다.

“지금 당장 네놈을 죽일 수 있다!”

마킷의 숨통을 쥐고 있는 교황 팔 근육이 불끈거렸다. 마킷은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양손으로 교황의 손을 떼려 했지만, 교황의 손은 악어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마킷의 발은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신체 발화 현상은 제 생각이었어요.”

교황 곁에 있던 이사벨이 부드럽게 말했다. 위기에 처한 마킷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평온했다. 교황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는 마킷에게서 손을 떼고, 이사벨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영생자 이사벨은 요령껏 손목을 비틀어서, 교황의 손을 뗐다.

“사람들은 교황님을 좋아해요. 유머 감각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죠. 당신이 신을 찬양할 때면, 저까지도 경건해지고 숙연해져요. 당신의 아름다움은 신비롭죠. 다리와 눈도 잃었지만, 그래서 당신의 사명이 더욱 빛나죠. 당신의 몸이 모두 멀쩡했다면, 지금쯤 교묘한 방법으로 피를 탐했을 거예요. 영생자의 두뇌는 스마트하고, 몸은 운동선수보다 더 뛰어나죠. 당신은 교황이라는 권력까지 갖고 있어요. 몸이 정상이었다면, 흔적도 없이 어린 사제 한둘을 해치우는 건, 쉬웠을 거예요.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나요?”

“나에게 영생을 주었다면, 왜 인제 와서 죽음을 논하는 거지?”

교황이 낀, 묵직한 어부의 반지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당신이라면 다를 줄 알았어요.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생을 이식받아도 피를 탐하는 괴물이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요.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는 당신을 왕으로 모시고 따랐을 거예요. 그래도 안전장치가 필요했죠. 그래서 당신의 다리와 눈에 핸드캡을 주기로 한 거예요. 그 핸드캡이 없었다면, 우리의 협상은 가능하지도 않았겠죠.”

“피의 갈증은 억제하겠네. 난 할 수 있어. 그리고 너희의 왕이 되어주지.”

“그런 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마킷이 목덜미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자넨 입 다물게! 지금이라도 네놈의 목을 부러뜨릴 수 있어!”

“아쉬워 마세요. 우리들의 왕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기억될 테니깐요.”

이사벨은 교황 곁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 …. 원하는 게 뭔가?”

“커피가 유럽에 소개될 때, 이교도의 음식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했죠.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려준 후로, 커피는 합당한 음료가 될 수 있었어요. 안젤로 교황님, 영생의학에 세례를 내려주시고 축복해주세요.”

“나의 이용가치가 바로 그거였군? 세례를 해주면, 내가 얻는 건 뭐지?”

“교황님은 하루 한 번 판타지늄 캡슐을 드십니다. 판타지늄 캡슐을 드시지 않으면, 생체 금속 불균형으로 생명에 녹이 슬죠. 판타지늄은 영생을 유지해주지만, 피의 갈증까지 해소하진 못하죠. 피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타입의 판타지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개발이 완료되면, 곧바로 공급해드리겠습니다.”

마킷이 말하자, 교황은 코웃음 쳤다.

“피의 갈증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 그건 알약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 갈증이 영생 그 자체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덕분에 모든 게 쉬워졌어요. 위대한 죽음을 맞이해서, 성자로 기억되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위대한 죽음을 갖는다면, 당신의 죽음은 부활절보다 더 큰 축제가 될 거예요.”

이사벨은 뺨을 교황이 끼고 있는 어부의 반지에 갖다 대며, 유혹하듯이 말했다.

한국스포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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