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또래 배우들 중에 내가 제일 연기 잘하지 않아?”

이랬던 김래원이 변했다. 더 이상 멋있는 척하거나 예뻐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20대 때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감으로 할 때”라며 “그거라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버틴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프리즌’(23일 개봉)을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작 ‘닥터스’의 의사 가운을 벗고 골 때리는 꼴통 경찰 유건으로 완벽 변신했다. 물론 죄수복을 입어도 잘생긴 건 변함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했으니까 오래했다. 같이 연기를 시작한 동료들 중에 지금 주인공을 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어렸을 땐 보여주기 위한 것들에 많이 치중을 한 것 같다. 관객들이 그런 모습에 환호하기도 했다.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다.”

김래원은 1997년 드라마 ‘나’로 데뷔, 20년째 연기생활 중이다. 패기 넘치던 20대는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보통 3년에 2편 정도 작품을 찍는데 최근에는 숨 가쁘게 달렸다. 재작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부활’(6월 개봉예정)을 시작으로 ‘프리즌’, 드라마 ‘닥터스’를 연달아 촬영했다. 스스로 “이렇게 빡빡하게 작품을 한 건 처음”이라면서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털어놨다.

‘닥터스’에서는 신경외과 의사 홍지홍을 맡아 박신혜와 달달한 로맨스를 선보였다. 오글거리면서도 박력 있는 대사로 많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그땐 멋있게 보이는 거 조금 신경 썼다. 인정한다”면서 “조금 젊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연기할 때 과하게 웃는다든지 목소리 깔진 않았다”고 너털웃음을 보였다.

반면 ‘프리즌’ 속 유건은 180도 다른 캐릭터다. 영화는 감옥의 절대 제왕 익호(한석규)와 새로 수감된 전직 꼴통 경찰 유건(김래원)의 범죄 액션을 그렸다. 김래원 특유의 능글맞은 매력과 남성미가 돋보였다.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한석규의 연기도 압권이었다. 김래원으로서는 시나리오도 재미있고, 한석규가 중심을 잡아주는데 출연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감독이 날 좋은 도구로 활용하겠구나 생각했다. 처음엔 유건 캐릭터가 말수도 적고 영화 톤과 함께 눌러져 있었다. 회의 끝에 미소를 주는 포인트가 나왔다. 반전이 있으니까 무겁게 가면 오히려 ‘숨기는 게 있구나’ 눈치 챌 것 같았다.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에 익호 패거리에 끌려갈 때도 ‘아~ 나 많이 맞았다’고 애드리브를 했다. 두 버전으로 찍고 골라 드시라고도 했다. 감독과 내 의견이 적절하게 잘 섞인 것 같다.”

김래원은 연기 베테랑이다. 촬영에 들어가면 휴대전화도 꺼두고 작품에 몰입할 만큼 “불이 붙어 연기하는 편”이라며 “지방촬영 갈 때 폰을 집에 놔두고 간다”고 말했다. 이어 “‘프리즌’ 때도 2~3일 촬영이 없으면 다들 서울 가는데 난 그냥 지방에 있었다. 그래야 캐릭터에 계속 빠져있는 느낌이 든다. 서울 와서 친구들 만나면 흐트러지더라. 특히 촬영 초반에는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첫 촬영에는 항상 들떠 있지 않냐. 이제 그 폭을 많이 줄였다”고 했다.

‘프리즌’은 교도소를 주 배경으로 했다. 세트장이 아닌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20여 년 동안 죄수들이 수감된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찍어 기분도 색달랐을 터. “음산하고 싸늘하더라. 피 냄새도 좀 나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해지려고 촬영 1~2시간 전에 미리 운동장에 가서 죄수복 입고 농구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다르다. 안 입던 옷을 입으면 어색하지 않나. 초반에 교도소 안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공교롭게도 김래원과 한석규는 전작에서 모두 의사를 연기했다. 한석규는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괴짜의사 김사부 역을 맡았다. 실제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와 ‘프리즌’에서 호흡을 맞추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낚시가 취미인 공통점도 있다. 김래원은 “한석규 선배를 안지 7~8년 정도 됐다. 예전에 비해 약간 말이 빨라졌다. 친구들이 나를 대할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생각했다. 난 노력을 많이 했다. 평상시에는 말을 빨리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자칫 말실수를 할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질문을 받으면 몇 초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 오해의 기미가 생기지 않게 부연설명도 계속 덧붙였다. ‘조심스러운 게 많냐’고 묻자 “나 때문에 누군가 불편해지는 게 싫다. 애기 때부터 잘 울지도 않았다. 남한테 피해주기 싫어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 때보다 솔직했다. 아쉬운 부분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후반부 형과의 사연이 밝혀지는 지점에 대해 “아쉽다. 개인적으로 총 쏘는 컷이 마음에 안 들었다. 좋게 표현하면 멋있어서 별로”라고 짚었다. 영화 초반 수감된 84동 식구들이 벽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도 “불편했다”며 “과장된 액션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엔딩신을 못 봤다. 가편집으로 봤는데 바뀌었다고 하더라. 끝까지 안 보려고 한다. 보고 나면 아쉬움이 남으니까. 찍고 나서 고민하는 건 어느 정도 필요한데 계속 붙잡고 있으면 힘들어진다. 차이나타운에서 덩치 큰 애를 심문할 때 ‘담배 있냐? 너 펴’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다. 재미있는 장면인데‘담배 있냐’고 묻는 부분이 잘 안 들리더라. 너무 아쉬워서 앞에 1초만 늘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그게 중요하진 않으니까 뭐(웃음).”

김래원은 이 영화에서 유독 많은 액션신을 소화했다. 목매달기는 기본, 물구나무로 고문 받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김래원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각났다며 술술 얘기했다. “주방 액션신에서 창길(신성록) 가슴에 드롭킥을 날렸다. 진짜 있는 힘껏 찼다. 성록이가 힘을 빼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더라. 190cm인 애가 날아갔다. 걔 187cm라고 하는데 거짓말이다. 188.7cm, 거의 189cm다”고 껄껄 웃었다.

영화 말미 감시탑 액션신도 명장면 중 하나다. 김래원은 대선배 한석규와 연기 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한석규의 연기에 “역시 최고는 다르구나”라고 느꼈단다. 열린 결말로 끝나 시즌2 가능성을 기대했지만 “안 하지 않겠냐?”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곤 “‘프리즌’ 250만 명은 넘겠지? 그래도 청불이니까”라고 웃으며 자리를 떴다. 사진=쇼박스 제공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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