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윙하는 타이거 우즈/사진=우즈 트위터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지난 21일(한국시간) 골프와 관련된 흥미로운 설문 조사가 나왔다. 골프닷컴과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등에 따르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 50명을 대상으로 경기 속도가 가장 느린 선수를 꼽은 결과 PGA 5승에 빛나는 벤 크레인(41ㆍ미국)이 선정됐다.

21%를 차지한 크레인 뒤로 재미동포 골퍼 케빈 나(34ㆍ한국명 나상욱)가 2위(17%)에 올랐고 전 세계 랭킹 1위 제이슨 데이(30ㆍ호주)가 3위(11%), 4위는 8%의 조던 스피스(24ㆍ미국)다. 반면 가장 빠르게 공을 치는 선수는 18%의 표를 얻은 맷 에브리(34ㆍ미국)에게 돌아갔다.

◇ 점잖던 골프마저 ‘백기’ 들다

골프계는 이 설문이 나온 시점에 주목한다. 앞서 지난 1일 1952년부터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해 온 영국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규칙을 대폭 개정한다는 방침에 발맞춘 여론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984년 이후 33년 만에 큰 폭으로 손질될 규칙 개정의 핵심은 스피드업과 간소화다. 선수는 40초 안에 샷을 쳐야 하며 분실구를 찾는 시간도 5분에서 3분으로 단축된다. 또 홀에서 남은 거리에 상관없이 준비된 골퍼부터 공을 쳐도 된다. 그린 위에 나 있는 스파이크 자국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티샷이나 퍼팅을 하려고 일단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캐디가 얼라인먼트(일직선 맞춤)에 도움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런 주요 변화를 토대로 데이비드 리크먼 R&A 규정 담당 이사는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에 출전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2020년 1월부터 적용될 골프 규칙 개정 검토 사항에 대해 소개했다.

◇ 야구ㆍ축구는 ‘스피드업’ 전쟁 중

최근 몇 년간 모든 프로 스포츠에 걸쳐 스피드업 바람이 거세다. 대표적인 종목은 야구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야구 세계화가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긴 경기 시간을 꼽는다. 랍 만프레드(59) MLB 커미셔너는 2015년 취임 이후 스피드업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스트라이크존을 높이고 고의 볼넷을 시도할 때 투구하지 않는 2가지 방안을 담은 제안서를 선수노조에 제출했다.

MLB 사무국은 1996년부터 무릎 아래를 경계선으로 규정하고 있는 스트라이크존을 무릎 위로 올리면 적극적인 타격을 유도하는 한편 볼넷과 삼진을 줄여 경기 시간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동 고의 볼넷은 시간 단축의 실효성보다 상징성에 무게를 둔 조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역시 지난 2월 규칙위원회 심의 결과 스피드업을 위해 투수 교체 시간을 종전 2분 30초에서 2분 20초로 단축한다고 발표하는 등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축구에서는 항의가 없는 진행으로 APT(실제 경기시간)을 늘리고자 머리를 맞대고 있다. K리그는 무엇보다 경기 지연에 단호해진다. 골키퍼 지연행위(골킥 6초룰)나 공격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잡는 행위, 선수 교체 지연행위에 엄격한 판정이 내리기로 했다. 시뮬레이션과 부상을 가장한 지연행위, 난폭 행위 또한 처벌이 강화된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2월까지 전 구단을 다니면서 판정 가이드라인을 전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경기 품질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다. 경기지연 부분은 가장 강력하게 한다. 비디오 레프리 제도가 시행되면 현장에서 바로 감수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무한 속도 경쟁의 본질은?

이 같은 스피드업은 종목 간 신경전을 넘어 거스를 수 없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근본 원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빠르고 즉각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미래 먹거리인 젊은 층을 중심으로 2시간에서 최대 5시간(골프 평균 4시간 45분)에 걸친 중계를 시청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지난 2013년 잡코리아 좋은일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빠른 것에 익숙해져 인내심이 부족해진다는 응답이 39.7%에 달했다.

대신 하이라이트만 편집해 모아놓은 영상을 소비하는 패턴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생중계가 생명인 스포츠로서는 광고 수익 하락 등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시장조사기관인 닐슨이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실시간 TV를 시청한 시간은 2013년 4시간 29분에서 2016년 4시간 9분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6월 LG경제연구원의 시청 행태 조사에서는 실시간 TV 시청 비율이 VOD(통신망을 통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영상을 원하는 시간에 제공해주는 맞춤영상정보 서비스) 시청 비율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의 27%만이 실시간으로 시청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시청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76%에 달했다. 이런 경향은 10~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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