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국내 대기업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사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수사 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지주사 전환은 현행 순환출자 대비 투명하고 선진화된 지배구조로 통한다. 최순실 사태로 불거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명분은 있지만 실속은 없는 셈이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4일 제48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당분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사회 의장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법률·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를 진행한 뒤 결과를 주주들에게 공개하겠다”면서도 “다만 검토 과정에서 지주사 전환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해 지금으로서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24일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 4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연기를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의 구속으로 그룹의 총수가 없는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과 같은 중대한 이슈를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주저하는 것은 법인의 인적분할 때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는 것을 막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때문으로 보인다. 현행 상법은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을 제한한다. 그러나 기업을 자사주를 포함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투자회사’와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회사’로 분리하게 되면 기존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게 된다.

투자회사는 사업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하는데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재 삼성전자 자사주 12.8%를 활용할 방안이 사라진다. 현재 주당 200만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해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 분할과 지주사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애초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법안통과 후 유예기간을 3개월 밖에 주지 않아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을 서둘러야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야 3당은 유예기간이 1년에 달하는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이 지난 2월 발의한 상법 개정안을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법안은 여전히 처리되지 않고 있다. ‘최순실 사태’로 자사주 활용을 제안하는 상법 개정안 발의가 빗발쳤지만 유예기간은 기존 개정안에 비해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상법 개정안 유예기간이 1년이나 되니 삼성전자가 당장 지주사 전환을 할 필요가 없어졌을 것”이라며 “국회가 대기업에 알아서 기어주는 꼴이고 야당도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해도, 최순실 사태로 반재벌 정서가 강해지면서 삼성 측이 자사주 활용을 통한 지주사 전환에 나서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상법 개정안 뿐 아니라 순환출자 해소,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등 여러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 역시 시간이 길게 소요되는 데다 반기업 정서에 삼성이 선뜻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에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간금융지주사 도입 시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일 수 있지만 ‘최순실 사태’ 등으로 논의가 전면 중단됐다. 현행법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지분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중간금융지주사, 순환출자 해소 등이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자사주 활용 문제와 별개로 삼성전자가 지주사로 전환하기에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사 중간금융지주사가 도입된다고 해도 삼성생명은 보유 삼성전자 지분 7.5%를 2대 주주인 삼성물산(4.2%) 지분율보다 낮춰야 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대차그룹도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지난 20일 현대자동차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먼저 언급했지만 현대차 측은 지주사전환에 대해 원론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만이 돌고 있다. 현대차는 삼성전자에 비해 보유 자사주가 적어 상법 개정안에 크게 개의치 않는 느긋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현대차 역시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이 무산되면서 지주사 전환에 장애가 생겼다. 현대차그룹 내에는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현대캐피털, 현대라이프생명, HMC투자증권 등 총 5개의 금융계열사가 있다. 현대차는 라이프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개사의 최대주주로 먼저 지분 정리가 필요하다.

SK텔레콤을 인적 분할해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손자 회사인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둘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던 SK그룹도 지주사 전환 작업이 ‘올스톱’됐다. SK 중심의 지주사 체제는 마쳤지만 공정거래법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자회사(SK의 증손회사) 지분을 100% 확보해야한다. 때문에 SK하이닉스가 직접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없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최태원 회장은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지주사 전환을 공식화했던 롯데그룹도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데다 최근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현재 일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이 안갯속에 빠져있지만, 정권이 바뀌고 경제민주화 정책을 밀어붙이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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