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개봉됐고, 여전히 그들은 이슈의 정점에 서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두 사람에 대한 화제성, 그리고 김민희의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호재가 후광 효과를 발휘하며 지난 주말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홍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가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아무래도 두 사람의 모습이 현실과 영화에서 어느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일까, 그것이 관객들의 가장 큰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불륜, 이별, 그리움, 재회가 작품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1부, 강릉에서의 2부로 나뉜다. 공간의 구분은 영희(김민희)의 심경의 변화를 말해준다. 헤어진 영화감독 상원(문성근)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존재하는 갈망의 공간으로서의 함부르크와 비로소 상원과의 재회가 이루어지며 그에 대한, 그리고 세상의 시선에 대한 원망을 분출하는 공간으로서 강릉이 배경이 된다. 열린 결말로, 꿈에서 깬 영희는 홀로 해변가를 걸어가며 멀어진다.

카메라의 존재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덜컥대며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줌(zoom)은 보기에 불편하다. 정서의 환기를 돕는다기보다 마치 순간 몰입을 방해하려는 장치 같다. 함부르크에 이어 강릉에서도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검은 남자는 뭘 의미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작품에 그렇게 존재가 선명하게 여러 번 등장했다면 뚜렷한 상징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 등장인물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게 목표였다면 성공인 셈이겠지만. 이런 불편함은 차라리 괜찮다. 작가주의 영화의 독특함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문제는 영희가 쏟아내는 대사다. 글쎄, 영화를 볼 때 대사가 이토록 귀에 거슬렸던 적이 있었던가. “사랑을 못하니까 다들 삶에 집착하는 거잖아요. 그거라도 얻으려고. 다 사랑할 자격 없어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입 좀 조용히 하세요”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날선 말들을 토해내듯 쏟아낸다. 동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마치 관객을 향해 취중진담이라도 하듯. 스크린을 방패 삼아 그동안 두 사람의 사랑을 비난했던 모든 자들에게 항변이라도 하는듯한 모습이다. “지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 해대며 불륜이라고 난리다. 가만히 좀 놔두지. 끝까지 지켜주겠다” 영화는 영희의 동료들의 입을 빌어 대중을 향해 그렇게 충고한다. 좀 세련되게 표현했으면 좋으련만 이런 직설화법은 듣는 순간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뮤즈인 김민희는 배역과 동일인물이나 다름없었다. 현실과 영화가 닮은꼴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어쨌든 그녀는 논란의 중심에서도 여전히 영화계가 아끼는 연기 잘 하는 몇 안 되는 여배우임에 틀림없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이를 입증했다. 자연스럽고 섬세한 연기력은 빛났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의문이 드는 건 도대체 이 영화가 누구를 위한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대중의 비난에 전도유망한 여배우가 받는 상처가 안쓰러워 홍상수 감독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처럼 보이는 건 너무나 작위적인 해석일까.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낸 감독과 배우는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관객은 이토록 불편하고 불쾌한데 말이다.

애초에 작품성과 김민희의 연기력만을 제대로 평가하려고 했던 의도는 사적인 영역을 영화에 그대로 투사해버린 그들로 인해 불가능해져 버렸다. 아무리 그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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