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은 국민연금의 손에 달렸다.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국민연금에 구애를 원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어 짝사랑에 그칠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린다. 다음 달 1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진 국민연금의 결정에 대우조선의 회생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전체 채권의 28.9%인 3,900억원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이 이 집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면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Pre-packaged Plan)행은 불 보듯 뻔하다.

▲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사진=연합뉴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최대 채권자인 수출입은행은 시중은행을 상대로 채무재조정 작업을 본격 진행한다.

산업은행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소재 본행에서 열리는 채권단협의회에서 채권은행 10여곳을 상대로 채무조정과 대우조선 지원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채무조정에의 동참을 설득한다.

지원방안에는 시중은행이 무담보채권 7,000억원(출자전환 5,600억원·만기연장 1,400억원)의 80%(5,600억원)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5년 유예한 뒤 5년간 나눠 받는 안이 포함됐다. 또 대우조선의 수주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5억달러 규모의 선수금보증환급(RG) 지원을 시중은행이 맡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채권은행으로부터 이런 내용에 합의한다는 확약서를 받고자 이날 채권단협의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 지원에 대한 국책은행과 시중은행들의 합의를 문서화한 뒤 나머지 채권자들을 설득하겠다는 복안이다.

금융당국은 대우조선 지원방안을 발표하기 전 시중은행들로부터 출자전환에 참여하겠다는 구두 합의를 받은 상태다. 지난 17일 금융감독원은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5곳의 여신 담당 부행장을 불러 대우조선의 추가 지원에 나서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당국의 요청도 거부하기 힘들지만, 시중은행들이 채무재조정에 동의하지 않아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간다면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이번 채무재조정으로 시중은행이 부담해야 할 추가 충당금을 6,400억원 가량으로 보고 있다.

추가 지원을 위한 이해관계자들간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은 국민연금에게 넘어갔다. 각각 1,800억원과 1,000억원의 채권을 가진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도 국민연금의 선택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는데 우리만 찬성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느냐”며 “자체적 검토를 하고는 있지만 국민연금 입장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열릴 다섯 차례의 사채권자 집회에서 한번이라도 부결되면 채무재조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출석 채권금액의 3분의2 이상이 동의하면 가결된다. 집회 5번 모두 이 조건을 만족하고 동의한 채권금액도 전체 채권액의 3분의1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찬성 결정에 따른 비판이 커서 선뜻 결정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기권하거나 아예 사채권자집회에 불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기금의 장기적인 이익 제고 관점에서 내부적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채무 재조정안과 관련한 국민연금의 찬반 여부는 내부 및 외부 인사로 구성된 투자관리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심의한다. 이후 주요 간부로 구성된 투자위원회로 상정돼 최종 결정된다.

산업은행은 조만간 국민연금과의 접촉을 통해 협력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산은 관계자는 “이 방안 자체가 P플랜에 들어갔을 때보다는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쪽으로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 “이 외에는 별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무재조정안에 동참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줄이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방안 발표안을 보면 모든 채권자들이 손실 부담에 동의해야 하는 까닭에 투자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분식으로 인해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이후 등급이 추락하기 시작한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해운업종과 동일한 손실 분담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부적절한 투자판단으로 인해 손실이 확대된 해운업종의 회사채와는 달리 대우조선해양의 유동성 위기는 책임 분담 측면에서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가지는 채무재조정에 동의하더라도 조선업의 사업재편이 성공하면서 만기 연장된 원금의 3년 뒤 상환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이 실패로 끝나 정부가 P플랜 방식의 구조조정에 나선다면 대우조선은 신규수주는 물론, 발주 취소 등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정상화 작업에 현실 불가능해진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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