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과연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에 반대하고 그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요? 대우조선이 P플랜(사전회생계획제도·P-Plan)에 돌입하면 손실이 더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모든 책임을 국민연금에 돌릴 겁니다. 지금은 소송을 검토한다는 등 강하게 나오고 있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결국 금융당국의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찬성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현재 강경한 자세를 취하면서 당사자인 대우조선은 물론, 금융당국과 KDB산업은행을 긴장시키고 있지만 여론의 거센 압박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는 것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측은 대우조선과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 등을 대상으로 489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대우조선의 분식회계가 밝혀지자 소송을 냈다.
 
이번에 회사채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연장하는 금융당국의 조건부 지원방안이 발표되자 국민연금은 산은과 대우조선의 면담제의를 거절하고 “추가 소송도 충분히 검토 가능하다”며 강수를 두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검찰 수사‘ 트라우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수하게 손익을 고려하면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다. P플랜에 들어간다면 법원은 무담보채권 90% 이상을 출자전환하라는 채무 재조정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건질 수 있는 원금은 10%이하에 그친다.
 
시중은행들이 이미 대우조선 회생을 위한 출자전환 등 채무 재조정에 큰 틀에서 합의한 상황에서 채무조정에 찬성해 대우조선이 살리는 것이 국민연금이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대우조선 파산 시 최대 5만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생긴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국민연금이 섣불리 채무조정안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국민연금에 남은 것은 ‘정무적 판단’이다. 국민연금은 가뜩이나 ‘최순실 사태’로 입지가 좁아져 있어 한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기권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측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며 “90% 손실과 30% 손실 가능성 중 어느 쪽을 택해서 책임을 지거나 배임 논란에 휘말리느니 차라리 선택을 하지 않고 책임을 금융당국에 다시 비판을 떠넘길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손익과는 별개로 기권은 어떤 선택을 해도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한 국민연금의 고육책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 측은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배임혐의로 고발하겠다면서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때는 ‘하지 말아야 할일’을 했던 것이고 이번에는 ‘꼭 해야 할 일’을 두고 국민연금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며 “만일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노후자금에 유리한 선택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검찰에 배임죄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비난도 손실도 커지는 데 바보가 아닌 이상 국민연금이 동의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국민연금이 산업은행의 감자를 전제로 채무조정을 요구했다는 일부 매체 보도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11월 신규자금 지원액 1조8,000억원을 출자전환하면서 대우조선 보유 주식 6,022만주가량을 소각하고 나머지 보유분에 대해서도 10대1 비율로 감자를 진행했다”며 “자본주의 사회를 부인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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